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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김형률의 투쟁

  •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  |   입력 : 2023-08-17 18:48:15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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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키에 37㎏ 몸무게. 상상조차 어려운 체격이다. 하지만 그와 직접 만났거나 사진이라도 봤다면 수긍할 것이다. 그는 18년 전 서른다섯의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바람이 불면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는 업적을 남겨 놓았다. 그는 ‘원폭 2세 환우’ 김형률이다.

1970년 7월 태어난 김형률은 2005년 5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투쟁의 삶을 살았다. 첫 번째는 자기 몸과의 투쟁이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온갖 병치레를 했던 그는 25세 때인 1995년 침례병원에서 ‘면역글로불린M의 증가에 따른 면역글로불린 결핍증’ 진단을 받았다. 그의 면역력은 선천적으로 신생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는 왜 오랫동안 질병에 시달렸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그의 모친이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피폭된 것을 떠올렸다. 병의 원인을 비로소 자각했다.

두 번째 투쟁이 시작됐다. 그때까지 원폭 피해자에 대한 관심은 1세대에 집중됐고, 원폭 2세 환우 문제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형률은 2002년 3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원폭 2세 환우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우리나라에 원폭 2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공식화됐다. 그는 환우회를 조직하고 원폭 2세 환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그의 투쟁은 죽음으로 3년 만에 멈췄지만 ‘원폭 2세 환우’들의 투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2019년 8월부터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원폭 1세 피해자들을 위한 의료비 지원만 들어있다. 원폭 2세 환우에 대한 실태조사 같은 내용은 없다.

지난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78년을 맞아 평화기원 행사가 열렸다. 한국인을 추모하는 위령제도 개최됐다. 한국인 피폭자는 7만~10만 명으로 추정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행사에 참석해 일본을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 표현했다. 아무 죄도 없이 일본에 끌려가 피폭자가 된 한국인들과 관련된 언급이나 배려는 끝내 없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일본은 핵무기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핵무기금지조약(TPNW)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핵우산(확장억제)을 제공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태도를 보면서 김형률을 떠올렸다. 죽음으로 멈춘 줄 알았던 그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묘비석에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적힌 것처럼 투쟁도 계속되어야 한다.

김희국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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