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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중세 고려의 여름, 휴가와 K-잔치

고려 칠석날만도 못했던 잼버리 축제에 국격 실추

부산엑스포 유치만큼은 ‘K시스템’ 위상 보여줘야

정은정 부경역사연구소 연구원

  • 정은정 부경역사연구소 연구원
  •  |   입력 : 2023-08-30 19:08:52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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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만금에서 각국 청소년이 모여 세계 잼버리 축제를 가졌다. 폭염과 폭우의 기상 이변을 감안하지 않은 열악한 환경과 미숙한 준비, 이 모두에 사실상 우리의 국격은 실추되었다. 틈을 메우려 예정에도 없던 K-CULTURE로 대체하는 땜방 수준의 조치도 조금은 실망스럽다. 국가 주도의 축제는 그 나라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조그만 부분일지라도 축제 개최의 날짜, 시설의 정비나 예산의 집행 편성은 미리 짜져야 한다. 중세 고려의 ‘K-잔치’처럼.

고려에서 세계적 행사는 팔관회 축제이다. 팔관회는 2월 11월 평양 개경 두 곳에서 개최된다. 수도 개경 팔관회에는 국내 관료는 물론 멀리 아라비아 송 거란 오키나와 탐라 여진 상인까지 내왕한다. 팔관회가 국제적 페스티벌인 만큼 예행연습, 준비절차, 비용도 세심하게 마련되었다.

고려 국왕이 주도하여 개최하는 축제(잔치)는 절기에 맞춰 열렸다. 절일 계절 시절 절기 탄절 명절은 모두 ‘절’이 붙여진 단어이다. ‘절’ 제정은 시간을 나누어 이를 주재하려는 군주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절일은 좁은 의미로서 국왕의 탄생일 정도로 쓰였다. 사실은 절일 보다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단어가 속절(세시풍속의 절일)이다. 속절은 고려사 형법지 금형조와 관리급가조에 수록되어 있다. 금형조는 특정일에 죄를 주는 것을 금해야 한다는 조항이며, 급가령은 관리의 휴가일을 규정한 법조항(령문)이다.

고려의 속절은 원정 상원 한식 상사 단오 중구 동지 팔관 추석 납일 9개이다. 조선은 경국대전과 세종실록 오례에 6개 속절이 올라있다. 조선은 정조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을 중히 여긴 대신 고려의 상사 중양 팔관제일은 빠져있다. 금형조는 어디까지나 형 집행을 금지하는 날짜를 기록한 것이어서, 관리급가조를 대조해야만 고려의 속절이 뚜렷해진다. 관리급가조에는 속절의 날짜와 관리의 휴가일을 정해 놓았다. 관리의 정기적 휴가는 매월 1 8 15 23일의 일주일 주기였다. 당 송 원나라에서는 열흘마다, 일본은 엿새마다 정기휴가를 준다. 7일 휴가제는 고려가 유일하다. 고려 관리는 정기 휴가 외에 속절이나 기상이변 같은 특별한 날에도 휴가를 받았다. 관리들은 원정(1.1)에 7일, 상원(1.15) 한식 복날 팔관일에 각각 3일, 상사일 단오 칠석 추석 동지에 1일 휴가를 받았다. 휴가 일정으로 보아 국가적으로 비중 있게 여긴 절일 축제는 원정 동지 팔관회처럼 한 해의 시작과 끝에 맞춰져 있다.

상대적으로 여름이 다가올수록 속절 축제는 국가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진 않았다. 여름의 대표 속절은 단오 복날이다. 칠석은 여름 끝물이자 가을의 시작에 해당한다. 국왕은 단오에 단오첩·단오부채를 선물로 주고, 뙤약볕이 내리쬐는 복날에는 토목공사를 중지하거나 사형집행도 금했다.

7월 7일 칠석날은 고려의 여름 속절 가운데 관인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다. 1월 7일에 상번록이라 하여 녹봉을 지급받던 관인은 또 한차례 후번록을 이날 받기 때문이다. 관인들은 개인적 인맥관리 차원에서 칠석회 칠석연 용두회 모임도 가진다. 장마철 동안 젖은 옷과 책을 말려 곰팡이를 방지하는 포쇄도 한다.

칠석날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난다. 견우 직녀별은 각각 은하수 동쪽 서쪽에 있다가 1년 중 음력 7월 7일에 가장 가까워 밝게 빛난다. 대칭하던 두 별이 가까워지는 것을 빗대어 견우직녀의 만남설화가 태어난 셈이다. 오작교를 놓은 대머리 까치는 입추 가까운 칠석 때 동물의 털갈이가 은유 된 것 같다. 견우성 직녀성은 꽤 오래전부터 중히 여겨왔다. 5세기 후반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 견우직녀도가 새겨졌지만, 국가 공식 차원에서 견우 직녀성에 제사를 지낸 시기는 고려 공민왕이다. 공민왕은 신돈의 비 반야에게서 어렵게 아들 모니노를 얻었다. 그가 우왕이다. 우왕의 생일은 칠석이다. 생일날을 칠석에 맞춘 것은 공민왕이 칠석에 아들을 기원한 데다 미천한 여인에게서 태어난 우왕의 탄생을 미화하려 한 것이다.

만민이 화합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잔치가 칠석에도 개최되었다. 칠석날에 고려 국왕은 관리를 모아 칠석회 시회를 열어 여름철 업무에 지친 관인을 위로했다. 고종때 개최된 칠석 잔치에는 무더위를 감안하여 얼음을 높이 쌓아 올린 얼음산을 가설했다. 지붕이나 돗자리 일산을 두어 더위나 폭우를 가리게끔 배려해 주었다. 궁중 잔치 개최일에 일기예보를 틀리게 한 일관·태사관에게는 문책을 하거나 주관 부서의 책임 소재도 따끔하게 캐물었다.

중세 고려에서는 비중이 덜한 여름잔치마저 시작부터 결과의 피드백까지 철저했다. 고려의 이른바 ‘K-잔치’에 비춘다면 개최를 손꼽아 기다리는 2030 부산엑스포는 착실한 준비과정을 거쳐 성공적이길 바란다. 공들여 쌓아 올린 K-SYSTEM, K-CULTURE가 무너지지 않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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