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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영구임대 30년

  • 권혁범 기자 pearl@kookje.co.kr
  •  |   입력 : 2023-09-20 19:35:26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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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탈출할 겁니다. 여기 살면 장가도 못 가요.”

그의 유년은 부산 한 영구임대주택에서 시작됐다. 그 이전은 너무 어렸다. 그래서 집에 관한 기억은 영구임대주택이 전부다. 13년 전 갓 성인이 된 청년. 그의 집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민간아파트와 붙었다. 도로 쪽으로 뚫렸던 출입구는 민간아파트가 생기면서 막혔다. 보도블록 색깔도 달랐다. 영구임대주택 앞은 초록색, 민간아파트 앞은 붉은색. 경계는 명확했다. 철저히 분리됐다. 이 영구임대주택은 지은 지 올해로 딱 30년째다.

빈곤층과 부유층 간 ‘주거지 분리’를 TV 드라마로 풀어낸 보고서가 최근 국토연구원에서 나왔다. 드라마가 시대 감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근거로 했다. 나름의 해석을 보태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가난한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을 ‘달동네’라고 부른 건 1980~1981년 드라마 ‘달동네’가 방영된 이후다. 그 시절 달동네는 실향민을 비롯한 도시 빈민이 하루하루 힘겹게 살면서도 꿈을 키우는 곳이었다. 판자촌은 가난의 상징이면서 한편으로 희망의 공간이었다. ‘앞으로 가는 길은 크고 환한 길. 새벽부터 한밤까지 근심 잘 날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라네 우리 동네 달동네’. 주제곡 역시 희망을 노래했다. 특히 1980년대 달동네는 ‘보통 사람들’(1982~1984년)이 사는 곳과 차별이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빈곤층을 밀어내고 분리하는 장치가 됐다. ‘서울의 달’(1994년)에서 달동네는 산 아래와 분명하게 구분됐다. “우린 쓰레기통에서 만난 거야. 난 쓰레기통에서 나가고 싶을 뿐이야.” 달동네에 낭만이 사라졌다. 더는 희망도 없었다. 외면하고 격리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됐다. 이 시기는 부산에 영구임대주택이 공급된 때(1991~1996년)와 정확히 겹친다. 정부와 부산시의 ‘정책 목표’는 영구임대주택을 한곳에 몰았고, 빈곤층을 사회에서 분리했다. 그들은 ‘섬’에 고립됐다.

2000년대 이후 달동네는 드라마에서 점점 사라진다. 정확히 말하면, 배제된다. 대신 ‘SKY 캐슬’(2018~2019년) ‘펜트하우스’(2020~2021년)처럼 부유층이 쌓은 웅장한 ‘성’이 등장한다. 계층 이동 기회는 권력으로 통제된다. 영구임대주택이 관심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는 시기다. 부산 영구임대주택이 대거 재건축 연한 30년을 넘기며 낡고 병들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보고서는 주거지 분리 주체가 빈곤층에서 부유층으로 바뀌었다고 결론 내린다. 소득 상위 5% 부유층(0.0287)의 주거지 분리 지수가 하위 5% 빈곤층(0.0045)보다 6.4배나 높다는 것이다. 어려운 수식에 눈 둘 필요 없다. 부산을 보자. 빈곤층이 영구임대주택이라는 섬에 갇힌 틈을 타 부유층은 그들만의 성을 쌓는다. 번쩍이는 광안대교, 탁 트인 해운대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성이 높게 올라간다. 올해 들어 이 동네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3.3㎡당 3000만 원을 넘어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불황은 별나라 얘기다. 급기야 4000만 원을 넘는 아파트도 등장했다. 빈곤층이 사실상 강제로 섬에 고립돼 잊히는 동안 부유층은 배타적 거주지를 형성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기회의 불평등이다. 자연경관은 물론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할 공공의 인프라에 빈곤층은 제대로 접근할 수 없다. 교육·일자리 정보도 마찬가지다. 부유층이 독점적 지위를 가진다. 영구임대주택 빈곤층에게는 기회가 제한된다.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공정한 경쟁이 될 수도 없다.

국제신문은 지난 18일 자부터 ‘영구임대 30년 보고서’를 쓴다. 6차례 더 보도한다. 30년 넘은 영구임대주택을 무조건 재건축하자거나, 빈곤층과 부유층 주거지를 억지로 섞자는 주장이 아니다. ‘섬’이든 ‘성’이든 어디에 살아도 시민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그 출발점을 주거복지에서 찾아보자는 거다.

지금은 30대 초·중반쯤 됐겠다. 13년 전 취재 현장에서 만난 그 청년은 다짐대로 영구임대주택에서 ‘탈출’했을까. 아니면 집과 함께 나이 들고 있을까.

권혁범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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