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유럽의 여러 나라 중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갖는 나라로 독일을 꼽는 데 주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져 세계 많은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도 가장 먼저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궤도에 올라선 나라가 독일이었다. 자동차와 기계장치 분야에서 이 나라는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독일은 절대 망하지 않는 국가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 독일이 심상치 않다. 독일 정부는 2023년도의 GDP 경제성장률을 0.2%로 전망했다. 이에 비해 독일 연방은행은 -0.5%로 예측했다. 참고로 2019, 2020, 2021, 2022년의 경제성장률은 1.1%, -3.7%, 2.6%, 1.8%였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2020년을 제외하고 비교적 양호한 성장률 흐름을 보여주었다. 그랬던 것이 갑자기 2022년 4분기 들어 -0.4% 성장을 보이더니 2023년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원인은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의존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10년간 독일은 값싼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을 끊자 타격을 받았다. 에너지 공급망을 빠르게 다변화해 고비는 넘겼다.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았다. 이제 독일은 중국 없이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2017년 이후 독일은 중국에 많은 수출을 했다. 독일 수출 1~3위 국가에 중국 이름이 항상 올랐다. 그래도 2020년까지는 수출입의 균형이 비교적 잘 맞았다. 2021년이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중국으로의 수출은 급격히 줄고 수입이 대폭 늘어났다. 그 결과 2022년을 기점으로 대중 무역적자가 폭증했다. 이 해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878억 유로(118조 원)로 2021년의 약 2배에 달했다. 이때부터 독일경제가 멈추기 시작했다.
중국에의 과도한 경제의존이 원인임을 독일이 알게 됐다. 여기에 독일제품의 수입은 막고 중국제품 수출은 늘리는 중국의 술수가 있었음도 알게 되었다. 2022년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가 이런 말을 했다. 중국이 독일의 최고 파트너인 줄 알았는데 정작 중국은 독일기업의 중국시장 진입을 막고 자국 시장 보호에만 매달렸다는 것이다. 중국 내 유럽연합 상공회의소 조르그 우드케 회장은 중국과의 관계를 손해 보는 연애로 비유했다. 독일의 중소·중견기업인 미텔슈탄트(Mittelstand)들이 중국시장에서 각종 제약을 받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독일은 중국에 대해 참 순진했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21세기 대표적 중상주의 국가다. 기술이 없을 때는 기술을 배울 만한 국가에 시장을 열어 마치 무역에 관대한 나라인 것처럼 굴다가 기술을 습득하고 자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교묘한 장치와 각종 이유로 수입을 틀어막는다. 이걸 독일이 간과했다.
한국기업들은 중국의 이런 태도를 이미 경험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초기 패자였던 현대자동차의 점유율은 현재 바닥이다. 한때 중국시장을 호령했던 갤럭시의 점유율은 0%에 가깝다.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의 자동차 배터리는 보조금 지급을 거부당해 점유율 0%다. 중국 승용차 타이어 시장의 1위였던 금호타이어는 중국 정부가 쳐 놓은 흑색선전에 시달리다 2018년 중국 기업에 넘어갔다. SK텔레콤이 2006년 중국 2위 통신사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고 공중에 날렸다. 한국이 당한 것을 독일이 그대로 당하는 중이다. 문제는, 독일은 중국에게 은인이라는 점이다. 독일의 많은 첨단 기업을 인수하도록 허용해 기술자립을 도왔다. 참고로 독일 벤츠의 지주회사인 다임러의 1대 및 2대 주주가 중국회사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배신감뿐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가 한마디 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만 담았다.”
중국은 조금만 힘이 붙었다고 생각하면 안색을 표변시키는 나라다. 가난한 중국을 일으켜 세운 나라는 미국이다. 중국을 WTO에 가입시키고 미국시장을 열어 중국 경제성장을 도왔다. 미 클린턴 정부 때 일이다. 이유는 중국을 자국 편으로 만들어 러시아와의 패권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많은 미국 지식인이 중국의 태도 변화를 우려하면서 이 정책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중국돕기는 계속되었고 오늘날의 중국을 만들게 된다. 그러자 숨겼던 본색을 드러냈다. 시진핑이 중국 굴기를 국가 비전으로 내세우며 미국과 충돌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도 구동독에서 자란 독일 메르켈 총리는 중국 올인 정책을 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독일 위기다.
독일은 우리가 잊을뻔한 교훈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5000년 한반도 역사는 중국과 엮이면 화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증언하고 있다. 한국은 최근에도 경험했다. 독일은 이제 경험 중이다. 중국경제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한국수출의 19.5%(2023년 1사분기 기준)가 중국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악재다. 향후 대중국 수출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한국경제에 충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길게 보면 가야 할 길이다. 당장이 아쉬워 이 길을 걷지 않으면 가까운 장래에 한국도 독일과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비참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