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에 방영돼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 우영우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거나 특별한 비유가 필요한 순간에 항상 고래를 떠올린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고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국내 유일의 고래박물관이 있고 고래바다여행선이 운항 중인 울산의 장생포가 새로운 여행지로 떠오르게 됐다.
장생포는 울산만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포구다. 깊은 수심으로 배가 드나들기 편리해 연안 항로의 기항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포경업 근거지로서의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장생포의 포경업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울산의 오랜 전통산업임을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그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장생포의 고래잡이는 1899년 러시아가 태평양 연안에서 잡은 고래를 해체하는 포경기지로 장생포를 지정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 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포경업을 독점하여 전국의 포경기지를 정비했고 장생포는 그 중심이었다. 광복 이후 장생포의 포경 역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동출자한 조선포경 주식회사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 말 고래잡이 전성기에 장생포는 20여 척의 포경선과 1만여 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큰 마을이었다. 하지만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가 상업 포경 금지를 결정하면서 고래잡이가 중단됐다. 국내 유일의 포경기지인 장생포에서도 고래잡이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인근에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포경에 종사하던 주민 대부분이 이주하며 마을은 점점 쇠퇴하게 되었고 고래잡이가 한창이던 1970, 80년대 6500여 명에 이르던 주민 수가 현재는 절반 가까이로 줄었다.
포경업 중심지로서의 장생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울산시는 고래와 지역 관광, 문화예술을 연계한 관광·문화 산업의 중심지로서의 가능성을 발견, 장생포를 고래문화특구로 지정해 새롭게 도약 중이다. 그 중심에 고래문화재단이 있다. 고래문화재단은 장생포 안에 여러 문화시설을 마련하고 다양한 행사를 열어 ‘고래 도시’ 장생포로의 전환을 이끌어낸다. 포경선에 타던 선원들이 묵던 신진여인숙을 리모델링한 문학 레지던시인 아트스테이, 버려진 동사무소 건물을 되살린 고래로 131 작은 미술관, 어업이 쇠퇴하며 용도가 사라진 냉동창고 건물을 북카페와 공연장, 전시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문화창고가 대표적이다.
장생포에는 부유했던 포경기지로서의 영광을 기억하며 그 시절을 향수하는 어른들이 남아 있다. 포경선의 선장과 그의 아내, 선원이 드나들던 이용원의 나이 지긋한 이발사, 먼 데서 시집와 고래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며 자식을 키우고 타지로 내보낸 뒤에도 홀로 남아 장생포를 지키는 늙은 어머니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기억을 영상 미술 문학으로 기록하는 젊은 장생포 사람들이 있다. 올해 아트스테이 입주 작가로 활동 중인 심고우리 작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장생포썰 記’에는 5개월간 인터뷰한 장생포의 주민과 관련자들이 들려주는 장생포의 역사가 생생한 증언으로 담겨 있다. 장생포 주민과 예술가들이 시대와 역사를 뛰어넘어 소통하고 교감하며 장생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이 외에도 기획단 클라이밋이 주관한 장생포 마을 축제 ‘다이버-시티 장생포’는 장생포의 다양한 풍경(바다, 고래문화특구, 공단)과 사람들(선주민, 어린이, 가게 운영자)을 경험하고 연결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울산의 가장자리라는 장생포 이미지를 재해석해 도심에서 벗어나 쉬어갈 수 있는 비일상적 장소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장생포는 포경기지에서 문화예술 기지로 다시 태어나는 중이다. 장생포는 지금 고래를 잡던 곳에서 고래를 살리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영우처럼 고래를 좋아하세요? 그렇다면 너와 나의 연결 고래, 울산 장생포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