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戰)에서 패했다. 무릇 전쟁에서 패한 장수는 말이 없는 법이다. 더욱이 이번처럼 완패한 경우에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잘못된 판세 분석과 교섭 전략, 상대 후보국의 전략에 대한 안이한 대처 등 패인도 수두룩하다. 정부나 부산시는 물론 ‘장밋빛’ 전망을 쏟아낸 언론의 책임도 크다. 아직도 허탈감과 실망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시민과 국민의 따가운 질책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몫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건 이번 전쟁이 처음부터 불공정하게 기획된 링 위에서 치러졌기 때문이다. 룰을 정하고 이를 어기면 제지하는 심판도 없었다.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엑스포뿐만 아니라 올림픽, 월드컵 같은 메가 이벤트 유치전에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기 마련이다. 현대 사회에서 힘은 곧 경제력이다. 하지만 이번 엑스포 유치전만큼 묻지마 식 ‘쩐의 전쟁’이 펼쳐진 경우는 드물다.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 외교 전문가들도 인정한 바다.
널리 알려진 대로 2030 엑스포 개최권을 따낸 사우디아라비아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앞세워 개도국과 저개발국은 물론 상당수의 유럽 선진국 표까지 싹쓸이했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는 우리와 달리, 물고기 자체를 준다고 약속한 사우디의 압승이었다.
사우디의 이런 전략은 일견 저개발국 등의 동반 성장을 이끌어 인류 공영에 이바지한다는 엑스포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개최도시 시민의 열의, 사회·문화적 자산 등 다른 요인들은 모두 무시된 채 오로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개최지가 선정되는 구조적 결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국제박람회기구(BIE)의 현지 실사, 5차례나 진행된 프레젠테이션(PT) 등은 결과적으로 표심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실패에 대해 거듭 사과하면서도 “유치 경쟁이 이렇게 진행되는 것에 (BIE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박형준 부산시장의 불만 제기를 패자의 푸념으로만 치부하기 힘든 이유다.
개최지 선정 투표를 주관하는 BIE는 심판으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 사우디는 이번 유치전에서 외교 관례를 깨는 행보를 이어 나갔다. 표 단속을 위해 각국 외교 장관급 인사의 파견을 요청, 이들을 파리 시내의 특급호텔에 머물게 하며 밀착 마크했고, 우리 대표단과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최지 결정 당일 총회장에서는 사우디 측 관계자로 보이는 이들이 한국 대표단과 각국 대표 사이를 의도적으로 가로막으며 막판 득표 활동을 방해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개최지 선정이 임박해 사우디의 ‘금품 살포설’도 무성했다.
우리 측은 간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으나 BIE는 ‘관련 규정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BIE 내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윤리위원회와 같은 조직도 없다. 이 때문에 세계 180개국 이상을 회원국으로 둔 국제기구로서의 위상과 권위를 BIE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시장은 2035 세계박람회 도전을 합리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실패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시민의 의견을 물어 재도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3수 끝에 올림픽 개최에 성공한 평창을 거울삼아 재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찮다. 이번에 얻은 뼈아픈 교훈이 재수에서 큰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회의적인 여론도 많다. 현재의 엑스포 유치 경쟁 방식이나 BIE의 태도에 변화가 없다면 재도전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엑스포를 얼마나 잘 치를 수 있느냐’가 아니라 ‘회원국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줄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르는 투표가 계속될 공산이 크다. 더욱이 당장 2035년 유치전에는 중국이 뛰어들 태세다. 전력을 다하더라도 쩐의 전쟁에서 물리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만약 이기더라도 엄청난 출혈 경쟁에 따른 ‘승자의 저주’가 예상된다. 박 시장이 밝힌 ‘합리적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이병욱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