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12월의 기도편지

이해인 수녀·시인

  • 이해인 수녀·시인
  •  |   입력 : 2023-12-21 18:36:22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1.12월은

12월은 우리 모두 사랑을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잠시 잊고 있던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고마운 일 챙겨보고 잘못한 일 용서 청하는

가족 이웃 친지들

12월은 우리 모두 은총의 시간에 물든

겸손하고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벗으로 가족으로 다가가는

사랑의 계절입니다

- 이해인의 시 ‘12월은’



이해인 수녀가 낙엽을 들고 나무 아래 섰다. 이해인 수녀는 한 해의 끝자락에 보내온 ‘12월의 기도편지’에 배려와 용서의 시를 담았다.
12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랑과 기도의 계절인데 공연히 몸과 마음이 바빠집니다. 성탄 맞이 대청소도 해야 하고 멀리 있는 친지들에게 축하편지도 써야 하고 은인들에게 선물할 과자도 구워야 하고…. 같은 시간인데도 12월의 시간들은 어찌 이리도 빨리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자그만 글방에도 요즘 부쩍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은데, 만나면 꼭 사진을 찍거나 책에 사인을 해야 하는 일이 잦아지니 꿈속에서도 사진을 찍고 사인하는 제 모습을 봅니다.

방금 이 메일을 확인하려고 컴퓨터를 여니 디스크 공간이 필요하다는 주의가 뜨고, 정리 좀 해보려고 작업실을 둘러보면 틈틈이 모아둔 조가비 솔방울 빈 병 빈 상자가 어찌나 많이 눈에 띄는지 평소에 정리를 제때에 못하고 사는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얼마 전 코로나를 앓고 나선 부쩍 입맛을 잃게 되어 오늘은 풋고추와 멸치를 잘게 다져 간장과 물을 넣고 팔팔 끓여 일명 ‘고추멸치간장’을 만들어 병에 담아 두었습니다.

밥에 비벼 먹으면 입맛이 돌아올 것 같아서입니다. 요즘은 규칙적으로 꾸준히 먹던 약도 먹기가 싫어져서 고민인데 곁에서 일일이 약을 먹었냐고 물어주고 챙겨주는 수녀들, 환자들의 식사를 챙기고 돌보는 힘든 소임을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후배 수녀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시 고쳐먹곤 합니다.

‘하고 싶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들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할 일들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또 하루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2. 나라와 이웃 생각

잔뜩 기대하던 2030 엑스포의 꿈이 좌절되면서 부산에 산다는 이유로 친지들이 제게까지 위로의 문자를 보내오는 요즘. 제가 살고있는 도시를 위해, 나라를 위해, 그리고 세계를 위해 진정으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패배의 부끄러움과 좌절을 딛고 다시 한번 겸손과 지혜를 모아 온 국민이 힘을 합해 조금씩 더 국력을 키워가야 되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들려온 지진의 소식, 같은 민족인데도 사이가 나빠지는 북한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불안과 우울이 겹쳐오지만, 그래도 희망을 지니고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내가 태어나 숨을 쉬는 땅

겨레와 가족이 있는 땅

부르면 정답게 어머니로 대답하는

나의 나라,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마냥 설레고 기쁘지 않은가요

말 없는 겨울산을 보며

우리도 고요해지기로 해요

봄을 감추고 흐르는 강을 보며

기다림의 따뜻함을 배우기로 해요

좀처럼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습관처럼 나무라기만 한 죄를

산과 강이 내게 묻고 있네요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며 고백하렵니다

나라가 있어 진정 고마운 마음

하루에 한 번씩 새롭히겠다고

부끄럽지 않게 사랑하겠다고!

- 이해인의 시 ‘나라생각’



며칠 전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의 재활시설에 가서 함께 시를 읽고 담소를 나누며 모처럼 유쾌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의 웃음은 천진했고 눈빛은 이웃의 따뜻한 이해와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지요. 이웃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임을 다시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찾았으나 뵈올 길 없고/ 영혼을 찾았으나 만날 길 없어 형제를 찾았더니 셋 다 만났네‘라는 말이 적힌 쪽지를/ 벗에게 전해 받고 생각에 잠깁니다/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사랑으로 찾아 나서면/ 길이 열리리라 믿고 희망하면서!/ 어려운 이웃 찾아 멀리 갈 수 없으면/ 매일 만나는 이들에게라도 말과 행동으로 정성껏 인내하는 작은 사랑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좋은 이웃으로 다가설 수 있을 테니까요/ 진정한 선물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이해인의 시‘ 좋은 이웃되기’



3 용서를 청하는 마음으로

지난 한 해 동안 받은 은혜에 감사함과 동시에 잘 못 했던 부분을 안팎으로 돌아보고 용서를 청하는 마음으로 제 마음의 뜰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12월입니다. 정원에 핀 하얀 동백꽃의 미소가 아름답고, 오랜만에 잔디밭에 놀러 온 후투티 새의 깃털과 가벼운 발걸음이 더욱 정겨운 이 시간. 저는 두 손 모아 낮은 음성으로 이렇게 기도 해 봅니다.



용서해야만 평화를 얻고/ 행복이 오는 걸 알고 있지만/ 이 일이 어려워 헤매는 날들입니다/ 지난 일년 동안/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시간들/ 무감동으로 대했던 만남들/ 무자비했던 언어들/ 무절제했던 욕심들/ 하나 하나 돌아보며/ 용서를 청합니다/ 진정 용서받고 용서해야만/ 서로가 웃게 되는 삶의 길에서/ 나도 이제 당신을 용서해야겠습니다/ 따지지 않고 남겨두지 않고/ 일단 용서부터 하는 법을/ 산타에게 배우는 산타가 되겠습니다

-이해인의 시 ‘용서하기’

-끝-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북항 ‘주거’ 난립 배경 밝힌다…칼 겨눈 檢에 긴장
  2. 2‘분양 대어’ 내달부터 줄섰다…부산 부동산 활력소될까
  3. 3김해공항 국제선 확장터미널 26일 개장…혼잡 완화 기대
  4. 4남문 광장 1만 여㎡ 부전역 연계 개발…시민친화 공원 박차
  5. 5부산총선 與 압승 뒤엔 막강 조직력 시의원들 있었다
  6. 6해운대·화명지구 정비 속도 붙는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본격 시행
  7. 7하나님의교회, 헌혈로 ‘생명’ 나누고 환경정화로 ‘지구’ 지키고
  8. 8갑작스러운 대포 세례, 소총부대 롯데의 변신
  9. 9“내 몸속 기생생물…2명의 자아 연기 힘들었죠”
  10. 10CCTV 늘리면 뭐하나…관제 인력난에 1명이 500대 맡아
  1. 1부산총선 與 압승 뒤엔 막강 조직력 시의원들 있었다
  2. 2부산 당선인 국토위 희망 최다…차순위는 산자위·정무위 꼽아
  3. 3국힘‘두달짜리’ 비대위 ‘관리형’ 가닥 잡았지만 위원장 후보 잇단 고사
  4. 4국힘 나경원-이철규 '나이연대'? 당사자 부인에도 '설'은 '솔솔'
  5. 5[속보]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 원내대표로 선출
  6. 6국힘 험지 당선자 “당 하는 것 반대로만 해서 당선”
  7. 7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 선출 "민주당과 한동훈 특검법 논의"
  8. 8영수회담은 하세월…野, 채상병 특검법으로 용산 압박
  9. 9민주당, 서지연 부산시의원 당원자격정지 1년 징계
  10. 10‘블록체인 위크 인 부산’ 市 엉터리 예산집행·정산 등 파문
  1. 1‘분양 대어’ 내달부터 줄섰다…부산 부동산 활력소될까
  2. 2해운대·화명지구 정비 속도 붙는다…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본격 시행
  3. 3“부산~미야자키 하늘길 열자” 관광협회 간 결연
  4. 4市 ‘국제회의복합지구’ 국비 7억3000만 원 확보
  5. 5日 골든위크에 中 노동절까지…해외손님 3만 명 부산 찾는다
  6. 6가덕신공항건설공단 이윤상 초대 이사장
  7. 7美 나홀로 호황…ETN 줄줄이 상장
  8. 8주식결제대금 하루 평균 2조 돌파
  9. 9스터디카페 피해 최근 1년간 40% 급증…'환불 거부' 최다
  10. 10KIAT, 산업 원천기술 확보 본격화…獨서 '글로벌 협력센터' 가동
  1. 1북항 ‘주거’ 난립 배경 밝힌다…칼 겨눈 檢에 긴장
  2. 2김해공항 국제선 확장터미널 26일 개장…혼잡 완화 기대
  3. 3남문 광장 1만 여㎡ 부전역 연계 개발…시민친화 공원 박차
  4. 4하나님의교회, 헌혈로 ‘생명’ 나누고 환경정화로 ‘지구’ 지키고
  5. 5CCTV 늘리면 뭐하나…관제 인력난에 1명이 500대 맡아
  6. 6"부산 봄꽃 보러 오세요"
  7. 7부산대어린이병원 응급실, 내달부터 야간진료 일부 중단
  8. 8특정공법 고집하고 일방 계약해지…강서구, 건설사에 억대 손배 물어야
  9. 9“위트컴 장군 조형물을 현충시설로” 국가차원서 관리 추진
  10. 10“법인설립 쉽게 해야 해외기업 온다” 주한美상의 회장, 부산에 건넨 조언
  1. 1갑작스러운 대포 세례, 소총부대 롯데의 변신
  2. 2세팍타크로 입문 1년 만에 전국 3관왕 견인 ‘예비 국대’
  3. 3한국 육상 남자400m 계주 올림픽 진출 노린다
  4. 4김하성 11경기 만에 멀티히트
  5. 5울산 전국생활체육대축전 25일 개막
  6. 6부산체육회·중국 하이커우시, 청소년 스포츠교류 업무협약
  7. 7파리행 길목서 한국 축구 레전드가 맞붙는다
  8. 8오재원 두산 후배들 협박 수면제 대리처방
  9. 9노장 김한별 농구 마감…BNK 은퇴선수 공시
  10. 10부산, 대한축구협회장배 장년부 우승
우리은행
후보가 후보에게 묻는다
부산 서동
4·10 총선 지역 핫이슈
원도심 숙원 고도제한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소규모사업장 중처법, 투약 중단이 필요한가?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옛 부산세관 복원, 진정한 새로운 전통이 되길
부산 영도, 낭트의 낭트 섬을 보자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과학을 품을 드라마
온난화로 인한 기후 질병의 증가
국제칼럼 [전체보기]
AI시대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생성형 AI시대와 저작권
기고 [전체보기]
부산권 MCR 사업의 부활을 위하여
건강보험공단에 특별사법경찰 권한 부여해야
기자수첩 [전체보기]
영화의전당 대표 연임…소통 외치는 현장에 귀 기울여야
김해외국인노동자센터 예산삭감 재고를
김갑수의 생각 [전체보기]
이재명 대표께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노무현이 옳았다
김용석의 시사탐방 [전체보기]
신문은 살아 있고, 칼럼은 말을 건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우리 융복합 음악의 시초 고구려악
원초적인 기층음악 민속악과 재즈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선한 영향력
‘팀킬 논란’ 황대헌의 선택은?
데스크시각 [전체보기]
가덕신공항과 박형준의 정치적 미래
도청도설 [전체보기]
온천천 두꺼비
마산 롯데백화점 폐점
메디칼럼 [전체보기]
일하는 사람의 1차 의료, 근로자 건강진단
100세시대의 건강관리법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조식전쟁
미쉐린 가이드와 ‘부산의맛’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 팩트 체크!
사설 [전체보기]
5월 국회 정쟁 아니라 민생 현안 마무리가 민심이다
교수 사직에 반쪽 의료개혁특위, 환자부터 생각하라
세상읽기 [전체보기]
제조업의 위기
역사의 경고, 잔인한 사월에서 희망의 오월로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의대 입학정원 갈등의 올바른 해법
우리 시대의 올바른 복지 원칙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부산항, 글로벌 물류 허브 플러스 알파
이해인 수녀 '기도의 창가에서' [전체보기]
12월의 기도편지
저무는 11월에 - 턴 투워드 부산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경제문제가 풀려야 인구문제가 풀린다
중국의 한국시장 시장교란
인문학 칼럼 [전체보기]
세상을 뒤흔든 춤
빛과 예술
장병윤의 대안 모색 [전체보기]
오! 홍범도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한국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IB교육학회 창립
‘자신과의 경쟁’이 ‘경쟁 교육’ 대안이다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비례대표 제도는 죄가 없다
‘자객공천’ 유감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이란
역사 속 와인 마케팅
특별기고 [전체보기]
부산의 위대한 도전은 계속 된다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낭만오페라의 종언! 푸치니
정명훈과 도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처음 보는 ‘무릉도원’
무호 이한복의 ‘운룡도’
CEO 칼럼 [전체보기]
드론으로 변화할 부산의 미래
특별한 장점과 잠재력 지닌 사람들
  • 국제크루즈아카데미
  • 걷기축제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