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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도청도설] K팝 행동주의

  •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   입력 : 2023-12-25 19:35:4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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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2020년 연례서한에서 “발전용 석탄 생산·제조로 매출 25% 이상 올리는 기업의 자산을 매각한다”고 선언했다. 기후위기의 ‘주범’에게 투자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국부펀드인 노르웨이정부연기금은 일찌감치 ‘기후 행동주의’에 나섰다. 2012년부터 팜유 제조사 주식 매입을 중단했다. 열대림을 파괴한다는 이유에서다. 인도네시아에서 팜유 사업을 하는 국내 한 기업은 국제사회 압력이 커진 2020년 친환경 정책을 내놓았다.

일반적으로 행동주의 투자는 지배구조 개선과 불필요한 자산 매각을 통해 기업 가치를 올려 수익을 거둔다. 강성부 KCGI 대표가 국내 행동주의 펀드매니저 1세대로 꼽힌다. 강 대표는 한진칼을 상대로 주주 이익 강화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해 화제가 됐다.

K-팝에도 행동주의가 등장했다. 펀드와의 차이점은 ‘이익’이 아니라 환경이 목표라는 점이다. 주체도 자본이 아니라 가수를 추종하는 ‘덕후’들이다. 방탄소년단(BTS) 팬클럽 아미가 서울 ‘BTS 숲’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난지한강공원에는 아이돌그룹 NCT 멤버 도영의 숲이 생겼다.

팬덤이 나무만 심는 건 아니다. 스타 마케팅을 앞세워 불필요한 소비를 유도하는 ‘상술’에 맞서기도 한다. 국제 연대조직인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 회원들은 2021년 BTS 소속사 앞에서 음반 8000장을 돌려주는 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요구는 “내가 사랑하는 가수의 앨범이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였다. 대형 기획사들이 새 앨범 발매 직후 포토카드나 사인회 응모권이 담긴 또 다른 앨범을 판매해 자원이 낭비된다는 것이다. 아이돌 가수를 모델로 기용한 기업에도 그린워싱(위장 친환경)이 아닌 진짜 친환경을 실천하라는 소비자들의 압력이 커지고 있다.

최근 영국 BBC방송이 케이팝포플래닛 운영자 이다연(21) 씨를 ‘2023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했다. BBC는 이 씨를 “세계 K-팝 팬을 결집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기후위기에 맞서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도록 요구한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이 씨가 진행한 캠페인이나 청원에 150개국 5만7000여 명이 동참했다고 한다.

올해 국내 실물 음반 시장 연간 판매량이 1억 장을 돌파(써클차트)했다. 이 중에는 아이돌 그룹의 초동기록(첫 일주일 사이의 판매량) 수립을 위해 ‘앨범깡’한 물량도 상당수일 것이다. 깨어 있는 ‘덕후’들의 기후 행동주의가 기후위기 극복의 상징이 되길 기대한다. 죽은 지구에는 K-팝도 없다.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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