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초당파 싱크탱크 퓨 연구센터의 2023년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 중 과학을 신뢰한다고 답을 한 사람들은 57%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고등교육에 대한 신뢰는 더 낮은 37%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국 저명 학회지 ‘사이언스(Science)’의 편집장은 2월 사설을 통해 과학인들 스스로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과학자들이 본인의 연구와 일에만 몰두하면서 과학적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고, 과학인들은 신뢰와 존경을 얻기 위한 노력을 더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주 시작되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권위 있는 미국 과학진흥회 (AAAS) 연차 총회의 주제가 ‘벽이 없는 과학을 향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Science는 AAAS가 출간하는 학술지다.
우리에게 ‘벽’을 없앤다는 말은 최근 대학들이 처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벽 허물기’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의 전통적 학문체계나 조직의 파격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학과나 전공을 초월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정책이다. 이미 과학계에서는 ‘오픈 사이언스’ 라는 이름으로 과학 분야 간, 그리고 과학과 예술이나 인문 분야까지의 ‘벽’을 없애고, 연결하는 과정을 거쳐, 생산된 지식과 연구성과들을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국제기구인 유네스코 등을 통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오픈 사이언스가 과학 출판물의 공개적 접근이라는 좁은 의미 이상의 진전이 없던 중, 유네스코 2021년 총회에서 ‘오픈 사이언스 권고’안을 193개국의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함께 권고안은 4개의 핵심축으로 구성되었는데, 오픈 사이언스 지식, 오픈 사이언스 인프라, 사회구성원의 열린 참여, 그리고 다른 지식체계와의 열린 소통이 그것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고, 개인의 안전을 보호하면서 협력하고, 재현성과 평등을 추구하여, 모두에게 과학적 연구 성과를 제공하는 원칙과 실천’을 위해 NASA를 포함한 17개 부처의 통합 정보채널을 2023년 개설했다. 독일에서는 2009년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차세대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는 과학 콘퍼런스를 아인슈타인 재단을 통해 후원했다. 이 콘퍼런스의 이름은 ‘무너지는 벽 실험실’ 대회(일종의 과학기술 경진대회)로 이후 연례행사가 되어 많은 나라에서 참가하는 오픈 사이언스 실천의 사례이기도 하다. 더불어 유네스코가 2015년 세계여성과학인의날(IDWGS)을 제정한 것도 동일한 맥락이라 할 수 있는데, IDWGS의 W는 여성인 Women의 첫 자, G는 여학생인 Girls의 첫 자로 여학생들이 미래의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열린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나오미 오레스케스 박사는 그녀의 책 ‘왜 과학을 신뢰하는가?’를 통해 우리가 허물어야 할 또 다른 벽을 소개하고 있는데, 과학은 항상 옳고 완벽하다는 과학인들의 오만이나 일반인들의 무조건적인 믿음이다. 한 예로, 1873년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의 클라크 교수는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고등교육을 받을 경우, 난소 등의 생식기능에 해가 될 것이라는 지금은 너무나 황당한 ‘과학적’ 이론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과학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과학적 방법의 완벽성 때문이 아니고, 벽이 없는 개방된 시스템을 통한 엄격한 검증과정들을 거치면서 발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듯 벽을 허문다는 것은 과학의 근본적인 속성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단순한 물리적인 병합 이상의 열려있는 검증과정을 통과했을 때 그 가치의 의미가 인정받게 될 것이다. 지구상의 난제 해결은 소통과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한 이해의 과정을 통해 신뢰가 쌓여가는 과학에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