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팔순을 맞았다. 그런데 첫 손자는 이제 돌 지나 겨우 두 달을 조금 넘었을 뿐이다. 내가 결혼이 늦은 탓도 있겠지만 큰아이가 나보다 훨씬 더 늦어 그럴 터이다. 실로 오랜만에 할머니가 된 내자는 이따금 손자의 동영상이나 사진을 들여다보며 기분 좋게 웃는다. 그 옆의 나는 손자가 나라는 존재를 알아보기 전에 담배를 끊어야 한다며, 그 시기와 금단 현상을 오가며 곰곰이 결단의 날을 조율하고 있을 뿐이다.

문득 지난해 성탄 전날의 아침 풍경이 떠오른다. 눈발이 드문드문 내리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파트 아이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나와 야단법석일 텐데 그날따라 아이들은 볼 수 없었다. 요즈음 아이들이 낭만이 없고 바빠서 그런 게 아니라, 아예 아이들 자체가 희귀해서 그런 거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지금 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나 보채는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는 ‘저출생’의 시대를 살고 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이나 생기발랄한 리액션을 보려면, 가까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찾아가야만 하는 ‘의도적인 불임’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우리 인생의 주기에 비유한다면, 아이들은 이제 막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꽃망울이나 다름없다. 맺힘을 풀고 툭 터지며 활짝 열린 꽃도 예쁘지만, 이제 막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는 앙증맞은 꽃망울은 우리를 더 설레게 한다. 아이들은 그 첫 단계인 꽃망울이다. 그들은 있는 집이건 없는 집이건 예쁘건 못났건 다 예쁘다. 때 묻지 않은 동심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그런 예쁨 덩어리를 낳고 기르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에게는 분명 뭔가 중요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들은 각종 보조금이나 장려금의 묘수를 부려보지만,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인 임시변통의 해결책에 불과하다. 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생각을 헤아리지 않고서는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낳아 오손도손 가정을 꾸려나가며 행복을 가꾸고 싶다는 당사자들의 근원적인 생각에 달려 있다. 가족의 지형도를 넓혀 나가겠다는 온기의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한겨울 눈밭을 헤매며 산수유 열매를 따 오는 아비의 애틋한 부정을 노래한 어느 시인의 ‘서늘한 옷자락’에 공감하지 않고서는 저출생의 늪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내자는 가끔 며느리와 통화를 한다. 저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 어떤 재미로 살까 라는 생각이 더러 든다고 한다. 아이 없이 홀로 남편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고, 말없이 서로 멀뚱멀뚱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것을 상상하니 참 잘 낳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서로 다투다가도 아이만 보고 있으면 치솟는 감정이 사그라든다는 것이다. 그런 내력을 전해 들은 날이면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다. 길 가다가도 임산부를 볼 때면, 아니 한 생명을 소중하게 키우고 있는 그 마음을 생각하면 그렇게 믿음직하지 않을 수 없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자가 며느리에게 하나 더 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보면 대뜸 아니라고 한다. 한 생명의 뿌듯한 소중함과, 어엿한 나이까지 키워야 하는 데에서 오는 경제적 부담의 이 기막힌 역설적 매듭을 못 풀고서는 저출생의 미로를 벗어날 수 없다.

아이들이 있는 풍경이 그립다. 그들의 웃음소리나 칭얼댐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서는 이 우중충한 잿빛의 도시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들이 노령의 도시에 통통 튀는 생명의 방점을 찍지 않고서는 이 나라가 젊어질 수 없다. 나라의 정책과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젊은이들 사이에 믿음의 채널이 있어야겠다. 그 해답은 고전에 있다. ‘논어’ 안연편 제7장에서 공자는 정치에 대해 묻는 제자에게 식량과 군비보다, 백성들의 믿음이 없이는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믿음이 없이는 저출생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 아이들이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 지름길은 당국과 젊은이들의 믿음을 전제로 한 진솔한 대화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 제법 걷는 손자를 보면서 저출생의 해법을 묻는다. 우중충한 도시의 늪에서 머무느냐, 아니면 푸르른 생기를 다시 찾느냐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