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시무태(得時無怠). 때가 왔을 때 게을리하지 말고 기회를 잡으라는 뜻의 사자성어다. 흔히 쓰이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는 말과 뜻이 같다. 지금 박형준 부산시장과 부산시에 꼭 필요한 말이다.
지난달 25일 부산 18개 지역구 국회의원 전원 명의로 ‘부산글로벌허브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 발의됐다. 특별법은 부산을 국제물류와 금융, 디지털 첨단산업의 메카로 육성해 싱가포르에 버금가는 국제자유도시로 도약시킨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싱가포르는 서울시와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600만 명에 불과한 도시국가이지만 지난해 기준 1인당 GDP는 아시아 국가 중 1위, 세계 5위인 명실상부 글로벌 허브도시다. 특별법이 제정돼 제대로 시행된다면 부산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이루게 되는 셈이다.
특별법은 의원 발의 형식으로 입법 절차에 들어갔지만 사실상 정부 입법이나 다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부산이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6일 부처 장관,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부산을 찾았다.
대통령은 당시 산업은행 부산 이전, 가덕신공항 성공 개항 등 부산의 여러 현안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면서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입법을 제안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엑스포 유치 실패로 돌아선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한 ‘립서비스’ 정도로 여겨졌다. 대부분 시민이 반신반의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로부터 약 두 달만인 지난 13일 대통령은 비수도권에서는 처음 열린 민생토론회를 위해 다시 부산을 찾았다. 토론회에서 대통령은 부산의 주요 현안을 빠짐 없이 언급하며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특별법 제정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뜻도 재확인했다. 이에 야당은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남발한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배경 등 모든 부정적인 요인을 감안해도 윤 대통령이 부산을 각별하게 챙긴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별법 제정만 하더라도 그렇다. 애초 정부 부처별로 특별법에 대한 온도 차가 컸다. 일부 부처는 법안 내용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자체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법안이 마련되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선봉에서 특별법 제정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이자 빠른 속도로 ‘교통정리’가 됐다. 민생토론회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각 부처 장관은 21대 국회 회기 내에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일이다. 박형준 시장과 부산시는 큰 기회를 얻은 셈이다.
박 시장에게는 더 큰 기회가 있다. 한국갤럽의 ‘2023년 하반기 광역자치단체장 직무수행 평가’에서 박 시장은 7개 특별·광역시장 중 긍정 평가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이 조사가 시행된 이래 역대 부산시장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사 기간 엑스포 유치 실패라는 초대형 악재가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박 시장에 대한 시민 여론이 상당히 우호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다 국제신문 주도로 지역 오피니언 리더와 전문가가 모인 ‘부산글로벌허브도시포럼’이 발족하고, 시민사회 단체가 앞다퉈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같은 여론은 대통령의 의지보다 훨씬 큰 기회다. 이에 더해 정치권은 이번 국회 내에 특별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큰 틀에서 합의하고 여야 지도부가 조만간 회동을 갖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어떤 부산시장도 박 시장 만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시민의 지지, 여야 정치권의 협조를 동시에 받은 적은 없다. 박 시장과 부산시는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를 잡아 반드시 성과물을 내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 부처는 물론, 다른 지자체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의하고 설득해 특별법안이 원래 발의 취지에 맞게 온전한 모습으로 21대 국회에서 통과할 수 있도록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이미 물은 차고도 넘칠 만큼 들어왔다. 이젠 제대로 노를 저어야 할 때다.
이병욱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