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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진격의 라면

  •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   입력 : 2024-02-29 19:35:31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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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러시아 시베리아 감옥에서 의문사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추위와 외로움을 독서로 이겨냈다. 1년간 영어로 된 서적만 44권 읽었다고 편지에 썼다. 스탈린 치하에서 10년간 옥살이를 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고선 “강제 노동수용소의 공포가 어느 수준이었는지 실감했다”고 적었다. 나발니의 고독을 달래준 음식이 한국산 컵라면 ‘도시락’이다. “뜨거운 라면을 빨리 먹느라 혀를 데인다”며 사법부에 “식사시간 제한(저녁 15분)을 폐지하라”고 호소했을 정도다. 나발니 요구가 거절당한 건 안타깝지만 러시아에서 ‘도시락’의 위상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국산 라면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지 오래다. 올해 1월 라면 수출액(8600만 달러)은 1년 전보다 39.4% 늘어 ‘1월 역대 최대’를 경신했다. 지난해 라면 수출액 역시 24.4% 증가한 9억5200만 달러를 기록했다. 10년 전인 2013년 2억1552만 달러 대비 4.4배 폭증한 것이다. 최대 수입국은 라면을 대중화시킨 일본이다. 132개국이 우리 라면을 사갔다. 1963년 9월 삼양식품이 일본에서 라면 기술을 도입해 신제품(한 봉지 10원)을 출시한 걸 고려하면 격세지감이다. 덕분에 농심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89% 증가했다. 불닭볶음면을 앞세운 삼양식품도 30% 이상 성장했다.

라면 소비 형태는 다양하다. 라면 사리를 넣은 부대찌개나 라볶이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는 국제신문 칼럼에서 “과거 ‘아미 스튜(Army stew)’라 불리던 부대찌개는 이제 당당하게 한국 전통음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K-푸드 인기는 선풍적이다. 축구스타 데이비트 베컴은 삼겹살과 돼지 껍데기를 먹는 장면을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할리우드 영화배우들이 “김밥에 빠졌다”(귀네스 팰트로)거나 “한국 사람보다 김치를 더 좋아한다”(스칼렛 요핸슨)고 고백하는 세상이다.

세계는 언제부터 K-푸드에 열광했을까. 30년 이상 시나브로 빠져 들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1988서울올림픽과 2002한일월드컵에 이어 2000년대 음악·드라마·영화 같은 K-콘텐츠가 세계인의 미각을 사로잡는 산파역을 했다는 것이다.

올해 정부는 수출 7000억 달러를 목표로 세웠다. 반도체와 자동차가 앞장서겠지만 거침없이 성장하는 K-푸드도 한몫 할 것은 분명하다. 고물가 시대엔 가성비 뛰어난 라면이 더 사랑받기 마련이다. 뜨거운 라면 한 그릇이 주머니가 가벼운 세계인의 배를 따뜻하게 채워주길 기대한다.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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