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자객 형가(荊軻) 이야기

칼쓰기에 능하다 소문나 시황제 자객으로 초청돼

암살 시도 중 비수 들켜…中 역사상 가장 극적사건

권상인 ㈔부산문화유산연구회 이사장·예술학박사

  • 권상인 ㈔부산문화유산연구회 이사장·예술학박사
  •  |   입력 : 2024-03-06 19:56:17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중국 전국시대 말기, 발해만으로 흘러드는 황하 하류 북쪽에 있던 조나라가 한때 강성했다. BC 250년 무렵 조나라 수도 한단에 진나라 태자 ‘정(政)’과 연나라 태자 ‘단(丹)’이 볼모의 신세로 만나 한때 오순도순 지냈다. 진나라 태자 정이 BC 247년 5월 아버지 장양 왕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을 때, 연나라 태자 단은 다시 볼모의 신세로 진나라 수도 함양에 왔다. 이때 임금 정은 두서너 살 아래의 단을 홀대해 단의 마음엔 원한이 쌓였다. 게다가 점진적으로 국력을 길러 천하를 정복하려는 진 왕의 야심을 간파하고, 단은 BC 232년 함양을 떠나 연나라 수도 계성까지 1500㎞나 되는 장거리를 야간 도주해 귀국해 버린다. 이 진나라 왕이 후에 전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다.

그로부터 2년 후, 진나라는 서북쪽의 한(韓)나라를 멸하고 1년 후, 다시 조나라를 격파했다. 조나라 북쪽에 있던 연나라 태자 단은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을 진나라로부터 살려내기 위해서는 군사적 대결로는 불가능함을 알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단이 진나라에 볼모로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장군 번어기가 연나라로 망명해 왔다. 태자의 스승 국무가 태자에게 “번 장군이 연나라에 있다는 소식을 진 왕이 알면 큰일입니다. 태자께서는 빨리 번 장군을 흉노 땅에 보내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쪽의 제나라, 멀리 초나라와 연합하고 북으로 흉노의 왕들과 강화를 맺어야 우리가 진나라를 견제할 수 있습니다”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태자는 스승의 계획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고 당시 현자로 이름난 위(衛)나라 사람 형가를 은밀하게 자객으로 초청했다.

형가는 학문이 깊고 칼 쓰기의 명수였으므로 그에게 높은 벼슬을 주고 날마다 좋은 음식과 미희를 보내 정중히 대접했다. 그러나 자객 형가는 1년이 지나도록 진나라로 떠날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뭉개고 있었다. 답답했던 태자 단이 참다못해 형가에게 “진나라 군대가 연나라 남쪽 역수를 건너 곧 쳐들어올 것만 같아 마음이 급해진다”고 말한다. 그러자 형가는 “태자의 말씀은 잘 알겠지만 지금 맨손으로 진나라에 간다 해도 진나라 왕을 만날 수 없습니다. 진나라를 배신하고 연나라로 온 번어기 장군을 진 왕이 현상금을 걸고 찾고 있다고 합니다. 하오니 번 장군의 머리와 독항 땅의 지도를 가지고 진나라에 사신으로 간다면 왕이 반드시 소신을 만나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독항 지역은 연나라의 군사적 요충이며 비옥한 평야가 전개돼 있어 연나라의 보고였다. 태자는 독항 지도를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고 천하에 예리하기로 유명한 서부인의 비수를 많은 돈을 주고 사들여 그 칼날에 독약을 발라 지도 중심에 숨겼다. 이 비수로 진 왕의 피부에 엷은 상처를 내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바로 죽도록 준비한 것이다. 또 장군 번어기의 머리를 넣은 상자를 준비하고 진무양이란 용사를 부사로 형가를 수행토록 했다.

드디어 진나라에 도착한 자객 형가는 번어기의 머리와 독항 지도를 바치는 것을 빙자하여 사신 자격으로 진나라 왕과의 대면을 청했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형가의 일행을 함양 궁에 초청해 대면한다. 왕이 번어기의 머리를 확인하는 절차가 끝나자, 형가는 독항 지도의 두루마리를 진무양에게서 받아 왕에게 설명하기 위해 앞으로 다가갔다. 두루마리를 탁자 위에 놓고 서서히 풀면서 지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두루마리의 마지막 부분이 펼쳐지는 순간, 비수가 노출됨과 동시에 형가가 왼손으로 진 왕의 오른쪽 소매를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비수를 들어 가슴을 찔렀다. 그러나 비수가 몸에 닿기 전, 깜짝 놀란 진 왕이 상체를 뒤로 젖히며 벌떡 일어남과 동시에 오른쪽 소매가 찢어지면서 돌아서서 도망가자, 형가가 비수를 들고 뒤를 쫓았다. 왕이 기둥 사이를 돌며 쫓기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 허리에 장검을 차고 있던 왕은 황급한 나머지 자기가 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진나라 법에 궁전 안에서는 왕 이외에는 칼을 지닐 수 없었으므로 그곳에 있는 신하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한 신하가 진 왕에게 칼을 빼서 치라고 소리쳤다. 그때야 왕이 오른손으로 칼을 뽑아 등 뒤로 돌려서 뒤쫓아오는 형가의 왼쪽 무릎을 쳐서 바닥에 주저앉혔다. 형가가 앉은 채로 왕을 향해 비수를 던졌으나 기둥에 맞고 떨어졌다. 되돌아선 왕의 장검이 형가의 몸을 여러 번 내려치니 바닥에 유혈이 낭자했다. 형가가 진 왕을 알현해 두루마리 지도를 설명하는 끝머리의 상황을 사자성어로 ‘도궁비수(圖窮匕首)’라 한다.

이 ‘형가의 자객 사건’은 전국시대 말기 국력이 쇠잔했던 연나라가 강국인 진나라와 군사적 대결을 피하며 영토를 보전하기 위해 자객을 보내 진나라 왕을 암살하고자 한 중국 역사상 가장 극적이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객’ 사건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2. 2“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3. 3해운대 벗어나 우리동네로…부산이 온통 극장이네요
  4. 4[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5. 5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6. 6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7. 7‘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8. 8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9. 9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10. 10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1. 1‘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2. 2부산 국힘 “보좌진 유죄 선고…전재수 시장, 시민에 사과해야”
  3. 3국힘, 중수청 앞서 “범죄자 천국될 것” 여론전(종합)
  4. 4李 “김지용, 친윤 아닌 반윤 검사” 중수청장 청문 요청키로
  5. 5靑 “이 대통령 ‘불의의 사고’ 표현, 부상 장병 위로한 것…북한 면죄부 주려는 것 아냐”
  6. 6이 대통령, 김지용 중수청장 후보자 청문요청안 재가
  7. 7전국 교정시설 수용률 126%…윤상현 “형사사법개편 앞두고 교도소 과밀 방치”
  8. 8전재수 “생곡 무산 땐 에코델타에 소각장 불가피”
  9. 9軍·유엔사 “군사분계선 이남 지뢰매설, 北 정전협정 위반”(종합)
  10. 10국정원 “우크라가 北포로 송환 비공개 먼저 요청”(종합)
  1. 1“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2. 2동래 플래그십 문 연 ‘르노’…미래차 R&D센터 내년 오픈
  3. 3북극 누빈 아라온호, 항로예측 기틀 마련
  4. 4신한銀 2만5000명 고객정보 털렸다…당국 조사
  5. 5대선주조 부산 문화 앞장…‘부산국제록페스티벌’ 8년째 후원 행보
  6. 6리사이클링·항만운영·담수화…부산 미래산업 이끌 혁신기술
  7. 7주가지수- 2026년 10월 1일
  8. 8BPA, 5번째 해외 물류거점 구축…베트남 사업 본궤도
  9. 9부산 연구개발 우수성과- 우수학술 부문
  10. 10부산 연구개발 우수성과- 연구혁신 부문
  1. 1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2. 2“능인선원 매각 협상 나서라” 국제신문 사활 건 총력투쟁
  3. 3아침기온 경남 7도, 부산 15도…2일부터 쌀쌀해진다
  4. 4준비 덜 된 경찰시대…‘대국민 수사 실험’ 우려
  5. 5‘반쪽’ 자갈치 축제…내홍에 창립멤버 어패류조합 빠졌다
  6. 6전재수 ‘되돌릴 수 없는 해양수도 기반 조성’ 선언
  7. 7부산중수청 문 여는데 아직 공사중…외부 출입통제도 어려워
  8. 8법리 복잡한 지능범죄 급증…“공부해 수사할 엄두 안 난다”
  9. 9“기관장 인선, 유능하면 지역 불문…산은 유치 채널 총동원”
  10. 10검찰 기존 사건 90일 간 수사 가능…대규모 사건이관에 현장혼선 우려
  1. 1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2. 2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3. 3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4. 4돌아온 금빛 주역들, 프로야구 막판 순위·타이틀 경쟁
  5. 5HJ중공업, 8∼11일 KLPGA 챔피언십 대회 주최…부산서 처음 열려
  6. 6해볼 만하다…女축구, 8년 만의 AG 메달 도전
  7. 7중원 황인범·투톱 변화…승리 축포 쏠까
  8. 8아시안게임 사격 남자 속사권총 우승…한국 25번째 金
  9. 9윤규성, 태권도 품새 금메달…한국 남자 개인전 3연패
  10. 10독립운동가 후손 재일교포 허미미, AG 여자 유도 57㎏급 금메달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국제칼럼 [전체보기]
개헌 말하려면 헌법 준수부터
나림 이병주, 더 일찍 법(法)으로 통(通)했다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영산회상, 불교음악에서 풍류음악으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민원인(들)
AI 패권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직업병에 대한 자세, 무지와 고의 사이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생곡소각장 정치적 셈법보다 원칙대로 추진해야
알래스카 LNG, 협력하되 국익이 최우선이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인공지능(AI)과 인류 멸종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