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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끼니] 미쉐린 가이드와 ‘부산의맛’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  |   입력 : 2024-03-10 19:31:5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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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가이드는 1900년 프랑스의 타이어회사 미쉐린이 제작하고 배포했던 무료 여행안내서로 출발했다. 파리와 외곽의 호텔 레스토랑 관광지 주유소 등의 정보를 담았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움직일수록 타이어 교체 주기가 빨라진다는 것에 착안한 마케팅이었다. 인기가 높아지자 미쉐린 가이드는 여행안내서 역할을 하는 ‘그린북’과 레스토랑 평가를 중심으로 하는 ‘레드북’으로 나뉜다. 오늘날 대중들이 주목하는 건 레드북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쉐린 가이드의 레스토랑 평가는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그런데 누가 어떤 방식으로 레스토랑을 선정하고 평가하는지 공개된 적이 없다. 신비주의 역시 미쉐린 가이드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2024 부산의 맛’ 표지
21세기에 접어들자 유럽(특히 프랑스)에서는 미쉐린 가이드의 권위주의 비밀주의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대안으로 ‘고미요 Gault-Millau’ ‘푸딩 Le Fooding’‘르베이가이드 Guide Lebey’ 등의 레스토랑 평가서가 등장한다.

경쟁 매체의 약진으로 위상이 흔들리자 미쉐린 가이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유럽을 벗어나 아시아 도시들에 주목했다.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도쿄 서울 등으로 무대를 확장한다. 올해 처음 발표된 부산판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자국 내의 치열한 경쟁으로 파리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미식도시라는 위상을 유지하고, 미쉐린 가이드는 아시아를 통해 가장 권위 있는 레스토랑 평가서라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에 진출한 미쉐린 가이드는 선택된 도시의 미식 수준을 견인한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해당 도시의 정체성과 지역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부정적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각 도시에서는 지역에 특화된 별도의 가이드북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부산시 보건위생과는 아시안게임과 월드컵을 앞둔 지난 2002년부터 부산을 대표할 만한 음식점을 담은 ‘부산의 맛’을 발간하고 있다. 나는 2019년부터 음식점 선정 작업에 참여했다. 음식점 선정에는 각 구청의 담당 공무원에서부터 외식업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이 참여한다. 선정을 위해서는 빅데이터, 이용자의 리뷰와 평판, 현장 실사, 법규 위반 사항 등을 참고하고 최종적으로 전문가들의 숙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선정위원의 합의를 통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구·군 별로 비슷한 숫자의 음식점을 배분했던 ‘지역안배 ’원칙을 깨고 경쟁력 있는 음식점을 선별했다. 지역의 정체성과 향토성이 강한 음식점에는 가산점을 부여했다. 빠르게 변하는 외식시장의 트렌드를 반영해 전통과 혁신의 균형에 중점을 뒀다. 해마다 선정 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해 권위를 높이고 있다. 그 결과 2002년에 200곳이었던 음식점이 2024년에 144곳으로 줄었다.

덕분에 ‘부산의 맛’은 2022년부터 부산의 외식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선정된 음식점의 자부심이 높아졌다. ‘부산의 맛’에 선정된 음식점을 순례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국내외에 부산을 알리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일본어 중국어 버전으로 발간된 책자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지자체로부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부산의 맛’이 미쉐린 가이드의 권위와 영향력에 감히 비견될 수는 없다. 하지만 부산 외식업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부산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만드는 평가서는 분명하다. 선택은 시장과 소비자의 몫이다. 파리의 사례에서 보듯이 다양한 평가가 이뤄질수록 부산은 더 맛있는 도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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