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과 4월에는 국경일인 3·1절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3·15의거, 4·19혁명 기념일 등 16개의 국가기념일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모두 53개의 국가기념일이 있으며, 법정기념일이라고도 한다. 이날에는 정부 주관으로 의식과 행사가 진행된다. 기념일은 기념을 넘어 계승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3, 4월의 기념일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라고 시작되는 헌법 전문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데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4·19혁명의 대상이었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최고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같은 훈장이 서훈된 사람은 김구 김좌진 강우규 홍범도 유관순 등과 외국인 5명을 포함해 현재 33명이다. 53개의 국가기념일과 건국훈장을 서훈받은 사람들을 잘 들여다보면, 역사성을 기반으로 보편적 가치를 좇아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제22대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 스포츠도 경기 전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의식을 진행하는데 정치판에서는 이 조차도 생략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비전과 프로세스’가 아니라, 휘발성이 강한 내용을 중심으로 총선 소식을 듣는 시민은 얼마나 어이없어할까.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정치가 실종되고, 정당 간에는 불신과 반목이 팽배해져 생산적인 정쟁이 아니라, 마치 원수처럼 적대적인 정쟁만 일삼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가 실종된다는 것은 리더십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좌다. 이와 같은 양상이 지속되면 될수록 시민들에게 투영되어, 불신과 반목이 전염되기도 하고, 매서운 회초리를 들거나 결국은 생업을 접고 나서게 된다. 정치적 리더십이나 입후보자들은 단 한 문장으로 된 헌법전문을 먼저 가슴에 새기고 정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정당의 목표가 선거를 통해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라면, 총선 때에는 헌법적 가치를 기반으로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비전과 프로세스’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총선에 임하는 순서가 바뀌었다. 비단 제22대 총선만이 아니라 직전의 대선이나 대개의 총선도 이런 식이었다.
총선에 나서는 정당은 더 큰 사회적 합의와 공감을 얻어, 목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시민들에게 ‘비전과 프로세스’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어느 당의 안이 더 적절한지, 어느 후보가 적합한지를 가늠할 수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입후보자 가운데 정해진 절차를 거쳐 공천하는 것이 상식이다. 공천 과정에서 발생한 잡음의 핵심은 공정성 여부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공정(公正 Fairness)인지, 공정(工程 Process)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낙천자의 주장과 언론의 보도 등을 액면 그대로 보면, 공천제도란 것이 정당의 리더십을 관철시키는 기제(mechanism)처럼 보인다. 매번 총선 때마다 공천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잡음이 있었다. 물론 이전에 비하면 불복하고, 낙천자가 항의하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점잖아졌다.
준비된 비전과 프로세스가 얼마나 알려져 있을까. 아무리 멋들어진 안이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시민이 잘 알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막상 선거가 임박하면 달콤한 지역공약에 의존하여 어필하게 된다. 이렇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정치적 리더십의 책임이 크지만, 입후보자를 중심으로 보도해 온 언론도 한몫했다.
이젠 어쩔 수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 이제라도 정당의 비전과 프로세스를 시민들에게 더 알려야 한다. 매번 이와 비슷하게 해왔으니, 이번에도 통할 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지난 보궐선거,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시민들은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다. 이번 총선에 다시 회초리를 들 기세이다. 정치적 리더십은 이번 총선을 통해 실종된 정치도 회복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회복될 거라고 보는 시민들은 거의 없다. 회복의 단초만 보여주어도 시민들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본업으로 돌아가서 기다린다.
시민들은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동반자이자 주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의 불신과 반목은 최고조에 달해 더 올라갈 곳이 없어 보인다. 반목과 질시의 정치가 아니라, 헌법에 기초한 역사성과 보편적 가치와 차이를 인정할 때, 존중과 배려를 통한 훈훈한 정치를 기대할 수 있다. 총선과 대선을 축제처럼 치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