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중섭문화거리 리뉴얼 사업추진을 위한 전문가 자문회의를 다녀왔다. 부산 동구청 담당자 안내로 범일동 할매국밥에서 시작해 희망100계단, 이중섭전망대를 돌아보고 이중섭거리와 이어진 동구도서관 책마루전망대로 향하는 책마루 길, 산복도로에 살던 우리네 누나들이 삼화고무, 조선방직으로 출퇴근하던 범일시장 옆 누나의 길 등을 걸으며 현장을 살폈다.
이중섭거리는 범일동 옛 보림극장 옆 할매국밥에서 시작해 이중섭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약 400m의 길로 2014년 5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곳이다. 범일동 1497번지 판잣집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이중섭의 부산 주거지와 범일동 피란 시절 그려진 그의 명작 중의 하나인 ‘범일동 풍경’을 모티브로 이중섭을 부산에서 살려낸 공간이다. 할매국밥 맞은편 보림 주차장 앞 이중섭거리 표지판을 시작으로 전봇대에 둘러진 이중섭의 그림 속 물고기 복숭아 게 아이 등의 그림이 새겨진 노란색 철판을 따라 걷다 보니 작은 주거지주차장 옆 동판으로 만든 이중섭의 얼굴이 나타난다. 사실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이중섭거리라 할 수 있는데 해설사의 안내로 이중섭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민족교육의 산실인 오산학교 재학시절 예일대 수석 졸업의 서양화가 임용련을 스승으로 만난 뒤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37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이중섭은 동경문화학원에서 다양한 서양 화풍들을 접하며 수학했고 훗날 부인이 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를 만난다. 1944년 이중섭이 귀국한 이후 영영 이별인 줄 알았던 두 사람은 1945년 마사코가 현해탄을 건너오면서 결혼으로 이어지고 태현과 태성 두 아들을 낳게 된다. 원산사범학교 미술교사 재직시절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을 왔다. 우암동 적기피란민수용소에 잠시 머물다 1951년 1월 제주도로 건너가 12월까지 서귀포의 단칸방에서 생활하게 된다. 지금은 그곳이 그 유명한 ‘서귀포 이중섭거리’가 되었지만 당시 이중섭은 1.5평도 안 되는 좁은 방에서 네 가족이 함께 생활을 했고 늘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렸다. 1951년 12월 이중섭은 다시 부산으로 건너온다. 귀환동포마을이 있던 범일동 1497번지 판잣집에서 피란생활을 이어나갔고 생계를 위해 영도 대한도기에서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고 부두에서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탄생한 것이 바로 ‘은지화’이다.
모진 피란생활은 마사코에게 결핵을, 아이들에게는 영양실조를 안겼고 1952년 6월께 장인의 사망과 유산정리 소식에 마사코와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냈다. 가족과 헤어진 이중섭의 외로움은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일본에 보낸 편지만 100통이 넘었다. 편지에 그려진 ‘편지화’와 그의 글을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간염과 거식증으로 식음을 전폐한 이중섭은 마사코가 보낸 편지를 읽지도, 답장을 쓰지도 않은 채 ‘돌아오지 않는 강’이라는 마지막 작품을 남겼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사코, 정말 외롭구려.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옮기며 안간힘을 다해 그림을 그리고 있소”라는 마지막 엽서 한 장을 마사코에게 보내고 1956년 9월 6일 마흔하나에 서울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했다.
 |
현재 범일동 이중섭거리의 옹벽에 새겨진 그의 일대기와 작품으로는 너무나도 큰 이중섭을 담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컸다. 자문을 앞두고 이중섭과 관련된 여러 책들과 작품을 접하고 난 이후라 이중섭을 알고 오는 이들에게 이 공간이 어떻게 비칠지 걱정도 커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을 인식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희망 100계단에 엘리베이터가 놓이는 것도 좋고 지금의 작품들을 철거하고 부산 생활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기획도 좋다. 작은 공간을 매입하고 콘텐츠를 가미해 다양한 관점에서 이중섭을 만나고 기억하게 하는 것도 좋고 스토리를 강화하고 체험 콘텐츠를 강화하려는 노력도 맘에 든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주민이다. 범일동 이중섭거리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주민들에게 공간이 어떻게 비칠지, 주민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중섭을 삶 속에서 공유할 것인지가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범일동 이중섭거리만의 색으로 제주 이중섭거리의 이중섭이 아닌 ‘범일동의 이중섭’을 살려야 한다. 이중섭은 2014년부터 범일동 이중섭거리에서 다시 살아나 10년을 살았고 이제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날 준비를 하고 있다. 벌써 기대된다. 그리고 기대가 현실이 되도록 필자 역시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아울러 많은 분의 관심과 노력도 요청드린다. 얼마나 좋은가. 우리 부산에서, 필자가 사랑하는 부산의 원도심에서 마사코와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인간 이중섭’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