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의 ‘화두’를 어디에 둬야 할까. 거대 양당의 프레임은 정권안정론(국민의힘)과 정권심판론(더불어민주당)이 기본이다. 민주당은 시종 정권심판론으로 대통령을 두들기고 국민의힘은 야당 대표들을 표적으로 ‘범죄심판론’을 부각하는 등 새 이슈를 던지고 있다. 누구의 주장이 유권자에게 더 어필할지는 선거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필자는 다만 ‘선거관리위원회의 신뢰 회복’ 역시 이번 선거의 화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0년 21대 총선과 2022년 20대 대선을 거치면서 선거관리위원회는 씻기 어려운 불신감을 안겨줬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자유로운 캠페인, 공정한 게임의 룰, 그리고 승자는 물론 패자도 흔쾌히 승복하는 과정들, 그 과정을 관장하고 시시비비를 따져 심판 역할까지 하는 기관이 선거관리위원회가 아닌가.
그런데 21대 총선 당시 사전선거 부정 의혹이 불거졌다. 유독 사전투표에서 여당이 크게 앞선 결과에 대해 극우 유튜버를 중심으로 음모론이 확산됐다. 황교안 민경욱 등 일부 보수 정치인이 여기에 가세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 뒤 연이어 부실한 선거관리, 부정부패, 무사안일한 업무 행태 등 어이없는 운영실태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지난 2022년 대선 때다. 선거 당일인 3월 5일, 코로나 확진·격리 유권자들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소쿠리 라면박스 비닐쇼핑백에 담아 옮기는 ‘소쿠리투표’ 사태가 벌어졌다. 선관위가 늘 외치던 ‘신성한 한 표’는 대체 어디로 갔나. 지난해 5월 불거진 선관위 직원 자녀 특혜채용 의혹은 압권이다. 국민권익위가 2017~2022년 7년간 경력직 채용 전수조사 결과 58명 부정합격을 포함, 353건의 부정사례가 적발됐다. 사무총장과 사무차장 등 고위 간부 자녀들이 줄줄이 연루됐다. 그 뿐만 아니다. 국가정보원이 북한으로부터 7차례나 해킹당한 사실을 선관위에 통보했으나 무려 2년간 보안점검 조차 받지않은 사례도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선관위가 이런 부정부패에도 불구하고 외부 감사나 조사를 거부했다는 사실이다. 헌법기관으로서 감사원의 감찰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난 뒤에야 하나씩 수용했다. 현재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선관위는 부정부패는 모르지만 부정선거는 없었다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떨어진 신뢰는 회복이 쉽지 않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한 40대 유튜버가 사전투표소에 불법 카메라 설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선관위의 사전투표 조작 여부를 감시할 목적이었다고 한다. 불신의 골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장치가 전국 40개 사전투표소에서 발견됐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IT강국’이기도 하다. 탄탄한 국가시스템을 가진 선진국이라는 자부심도 있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부정선거가 벌어질 리 있겠는가. 필자 역시 그런 음모론에 단 한 번도 동조한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선관위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갔다. 부실한 선거관리, 부정부패, 무사안일한 업무 행태까지 다양한 사례가 드러난 탓이다.
지난 2021년 1월 6일.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 국회의사당이 폭도들에 점거됐다. 약탈 파괴로 이어져 5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도날드 트럼프 후보 지지자들인 당시 폭도들은 사전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부정은 드러나지 않았다. 극심한 진영논리가 부른 참사였다. 우리도 선관위에 대한 불신이 이런 사태로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선관위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여타 기관보다 더 큰 도덕성이 요구된다. 선거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이번 선거는 유난히 여야간 경쟁이 극심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선거 후 또다시 부정선거 논란이 벌어져선 안된다. 국민은 치열하게 경쟁하되 깨끗하게 승복하는 ‘선거축제’를 즐길 권리가 있다. 선관위는 이번 선거를 실추된 이미지를 털어내고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날 기회로 삼길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