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일극주의의 기형적 국가 체제인 대한민국에서 부산은 한때 2위, 지금은 자칭 2위의 도시다. ‘서부인대(서울-부산-인천-대구)’는 부산 만의 자위적 수식어일 뿐 실상은 ‘서인부대’ 순이다. 아울러 인천과 부산의 격차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벌어질 것이 자명하다.
부산이 ‘자칭 제2도시’로 전락한 데는 부산의 정치지형이 큰 몫을 했다. 부산의 정치지형은 보수로 확고히 기울었던 과거와 달리 경사가 최근 완만해졌지만 보수 정당에 유리한 구도인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부산 정가에선 보수 정당의 예선전(공천)에 관심이 더욱 집중됐다. 국민의힘의 전신 정당은 인재와 후보자가 넘쳤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선이 아닌 예선에서 사생결단의 전쟁이 벌어졌다. 선거 범죄도 대부분 공천 과정에서 발생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실종신고까지 돼 선거운동을 하지 못한 한나라당 후보자(선거일 이후 숨진 채 발견)가 당선되는 일도 있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정당은 후보자를 배출하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이른바 ‘선거 비용’을 한몫 챙겨보자는 심산으로 출마하면서 자질이 의심될 만한 후보자도 적지 않았다. 민주당은 18대와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에서 후보자를 전원 배출하지도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되는 정치지형에 익숙한 보수 정치인들과 ‘선거비용 보전’만 받으면 다행이라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진보 정치인들 간의 경쟁은 부산에서 실종됐다. 보수 정당은 텃밭이라는 이유로, 진보 정당은 불모지라는 이유로 부산에 공을 덜 들였다. 이번 총선에서 양당 후보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선거구가 많고 심지어 부산에서 가장 보수적인 해운대갑 선거구에서도 접전 구도가 형성된 것도 부산에서는 ‘대이변’이다.
부산의 이 같은 정치적 지형과 정치 풍토가 고착하는 사이 수도권은 예나 지금이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한 여야 간 혈투가 벌어진다. 조금이라도 나은 공약과 정책을 선보이려는 여야의 죽기살기식 경쟁은 수도권 환경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었다. 수도권의 ‘영리한 표심’이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살얼음판 같은 정치적 긴장감을 조성했다. 이에 여야는 언제나 수도권 위주의 정책을 부르짖었다. 수도권은 인구에 비례해 의석 수도 많다. 결국 수도권에서, 수도권을 위한, 수도권에 의한 입법이 언제든 이뤄지는 것이다. 여야의 피를 말리는 수도권의, 경쟁이 없었던 부산의 정치지형이 오늘날 수도권 일극주의를 낳았다는 논리는 결코 비약이 아니다.
공정성이 담보된 경쟁이 없는 조직이나 사회가 도태되는 것처럼 정치의 발전과 정치인의 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치열하고, 절박한 경쟁이 필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에게 역대 선거에서 볼 수 없었던 긴장감과 자신감을 각각 안긴 상황이라 정치적 호오나 정당의 선호도를 떠나서 부산 유권자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다만 이 같은 경쟁 구도의 형성을 정치적 우위에 있는 세력을 깎아 내리고 열등한 세력을 띄워주기 위한 의도로 해석할 필요는 전혀 없다. 부산이 수도권처럼 여야 간 경쟁구도를 갖추지 못한 데는 유권자들 환심을 사지 못한 민주당의 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가덕신공항 건설 등 부산에 상당한 애정을 쏟았지만 현재는 KDB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 문제만 봐도 여전히 ‘공(투자)을 들일 만큼의 표(수익)를 따진다’는 인상을 준다.
내일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된다. 정권을 심판하든, 야당을 심판하든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권자는 투표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해야 할 책임이 있다. 냉소적이지만 ‘시민은 투표일에만 자유롭고 투표가 끝나면 노예로 돌아간다’는 장자크 루소의 고전적 지적이 있듯 투표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투표일조차도 유권자들이 ‘호구’가 된다면 권한의 수임자(정치인)가 위임자(국민)에게 군림하게 된다. 우리를 대표하는 정치인의 수준이 곧 우리의 수준, 정치인의 역량이 주민의 역량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송진영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