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일을 하다 가슴 통증을 느낀 경남 김해의 60대 심장질환자가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최근 사망했다. 구급대원이 병원 6곳에 연락했는데 모두 ‘의료진이 부족하다’며 거절했다. 천신만고 끝에 2차 병원에서 대동맥박리 진단을 받고 부산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시점은 5시간이 지났을 때다. 골든 타임이 속절없이 길바닥에 버려지는 사이 생명이 꺼졌다. 유족들은 “의료 파업만 없었더라면…”이라고 원통해 한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2000명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두 달을 맞았다. 의료 공백으로 국민이 골병 드는데 ‘벼랑 끝 대치’는 풀릴 기미가 없다. 정상국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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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17일 서울의 한 대형병원 모습. 연합뉴스 |
의료 시스템 마비로 고통받는 환자는 한 둘이 아니다. 한 달 전 호흡 곤란을 겪던 부산의 50대가 최초 신고시점부터 4시간 이상 떠돌다 울산에서 수술 도중 사망했다. 전공의 집단사직이 시작된 올해 2월에는 다리를 다친 환자가 부산에서 경남 창원까지 이송됐다. 종합·대학병원이 밀집한 부산 현실이 이 정도다. 다른 중소도시 사정은 더 나쁘다. 협상 물꼬를 트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은 개탄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이 의료개혁 논의 기구로 제안한 사회적 협의체는 언제 출범할 지 기약이 없다.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은 18일 “의료개혁은 필요한 과제”라며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사의를 표명했다. 전공의 처분 유예를 이끌어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마저 물러나면서 정치적 해법을 모색할 인물이 사라졌다.
의료계 역시 ‘2000명 증원 백지화’ 요구에서 물러날 기미가 없다. 전공의와 개원의 입장이 달라 대정부 협상창구조차 구성 못한 상태다. 지난달 제출한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가 수리되면 의료현장은 공백을 넘어 대란이 불가피하다. 대한의사협회는 민법상 사직 효력이 오는 25일부터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교수들까지 이탈하면 응급 중증환자 치료는 더 어려워진다. 전공의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복귀 조건으로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 경질을 내걸었다. 정부에 양보를 넘어 ‘무릎 꿇으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꾸 무리한 요구를 하면 의료 불신이 커지고 국민은 등 돌린다. 불어나는 적자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개설한 수련병원의 경영 상태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될 게 뻔하다. 병원이 문 닫고 환자가 외면하면 의사가 설 자리는 어딘가.
파국을 막는 길은 의정의 양보에 달렸다. 정부는 ‘2000명 증원’을 수정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전공의 근무여건 개선에 속도를 붙여 복귀 명분을 줘야 한다. 의료계도 사회적 협의체에 동참할 때다. 합리적인 의견 개진을 통한 대안 모색이 민주주의 원칙 아닌가. 4·10 총선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은 뒷짐만 져선 안 된다. 정부 여당이 못 푼 갈등을 중재한다면 수권 능력을 인정받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제안한 ‘보건의료 개혁 공론화 특별위원회’와 정부의 사회적 협의체가 유사한 만큼 의료계가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힘을 보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