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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국민의 명령

한일용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 한일용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
  •  |   입력 : 2024-04-21 19:26:1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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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봄이 왔는데도 의료계는 아직 겨울이다. 꽉 막힌 벽에 부딪혀 한걸음도 진전이 없다. 의대 정원을 지금 늘린다고 해도 이들이 실제로 활동하는 것은 10년 후에나 가능하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밀어붙여야 할 만큼 두 달 전의 한국의 의료가 그토록 긴급상황이었던가. 10년 후에도 그 효과를 담보할 수 없는 정책으로 지금 당장 국민과 의사들이 이렇게 불안과 고통을 감수해야 할 만큼 시급했던가 말이다.

열악한 필수의료, 공공영역의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 전체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그 시작부터 잘못됐다. 정부는 잘못된 정보로 국민을 선동했고, 의도적으로 의료계를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아갔다. “응급실 뺑뺑이 돌잖아? 소아과 오픈런하지? 산부인과는? 지방에는 의사 없잖아? 이게 모두 의사 수가 부족해서 그런 거야. 증거는 OECD 숫자가 말해줘. 전문가의 논문도 있어. 늘려야하는데 의사들이 자기들 밥그릇 챙기려고 반대해. 여론조사는 전국민의 89%가 의대정원 확대에 찬성해. 이것은 국민의 명령이야.”

의사가 대폭 늘어나면 경쟁에 의해 국민은 더 쉽게, 더 짧은 대기시간으로 더 양질의 의료를 받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절대로 아니다. 다른 직종에서 2000명을 늘리는 것과는 다르다. 병원의 수입은 건강보험 재정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의사 수 확대는 의료행위의 증가로 이어질 수 밖에 없고, 건강보험의 재정 고갈은 피할 수 없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도 건강보험은 적자이며, 2032년에는 62조 원의 누적적자를 예측했다. 지금 같은 의료를 누리기 위해서는 국민이 내는 세금(건강보험료)의 증가는 필연적이며 의대정원 증가는 이를 더 가중시킬 것이다. 어떤 이는 의사를 늘린다고 정해진 환자 수가 늘어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이 역시 의료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이처럼 의대 증원에 따른 부작용도 정확하게 알리고 여론조사를 했다면 과연 국민의 89%가 찬성했을까?

더 큰 문제는 증원되는 의대생을 교육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전국 의대학장 협의회는 “의대 교육여건을 고려할 때 2000명 증원은 불가능하다”며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정부는 의대교육을 담당하는 학장들을 아예 빼버리고 대학총장의 의견만으로 다시 증원 계획을 밀어붙여 각 대학에 신입생 배정까지 해버린다. 부실교육의 우려에 대해 “실습용 기증시신(카데바) 구하면 돼! 안되면 수입할께! 각 대학별로 남는 카데바를 서로 공유하면 돼! 의대교수가 모자란다고? 의대교수도 2000명 늘리면 돼! 강의실이 좁아? 적극 지원해줄게!”라는 식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정부가 참고했다는 논문, OECD 통계 등에도 2000명 증원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 속속 밝혀져도 막무가내다.

과거 의료계의 반대에도 강행했던 의료정책을 생각해보자. 대표적인 것이 의약분업, 산부인과 포괄수가제,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제도 등이다. 의약분업 당시도 복지부 장관은 의료비의 상승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정책시행 후 약 20조 원의 건강보험재정이 더 들어갔으며, 국민이 부담하는 의료비도 배 이상 증가했다. 고령의 환자가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과 약국, 두 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함도 생겼다. 2005년 의전원 제도도 처음 목적한 의과학자 양성은 실패하고 오히려 현재 의료의 기형적인 면만 더 가중시키는 꼴이 되어버려 지금은 거의 폐지되었다. 분만포괄수가제는 산부인과의 폐업과 몰락을 가져왔다. 그리고 실패한 그 정책을 추진했던 정부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막무가내식 의대정원 증원은 실패할 수 밖에 없고, 실패가 증명된 10년 후에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오로지 국민만 피해를 보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 당장 엉터리 증원계획을 철회하고 의사와 국민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편가르기를 하지 마라. 이것이 국정운영을 잘못한다고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70% 국민의 요구이며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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