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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세상을 뒤흔든 춤

니진스키·바우쉬의 안무작, 발레·무대미술 고정관념 깨

원효대사·동학 창도 최제우, 예술적 도구로 세상 깨우쳐

이상헌 춤 비평가

  • 이상헌 춤 비평가
  •  |   입력 : 2024-04-24 19:18:17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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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5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 러시아 출신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봄의 제전’에 바슬라프 니진스키가 안무한 발레 ‘봄의 제전’이 처음 소개됐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발레 뤼스가 제작한 작품이라 콧대 높은 파리 관객의 기대는 더욱 컸다. 하지만 막상 막이 오르자, 불협화음과 기존 발레 문법에 한참 어긋난 안무에 화난 관객들이 객석에서 소란을 피웠고, 출동한 경찰도 관객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평론가들은 ‘봄의 학살’이라고 비난했다. 이날은 유럽 공연예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캔들로 남았다. 그런데 ‘봄의 제전’은 초연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안무가에 의해 수없이 재해석 되었다.

피나 바우쉬는 인간 실존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독일 출신 안무가로 현대무용의 기념비적 인물이다. 1978년 한 작품에서 소규모로 물을 사용해 본 후 이듬해 ‘아리아’에서 무대 전체를 1㎝ 깊이의 물에 잠기게 했다. 무대 예술 역사상 최초이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접한 극장 스태프들은 격렬하게 거부했다. 사실 스태프의 거부는 타당한 면이 있었다. 섬세한 기계와 전기 장치가 가득한 무대에서 물을 쓰다가 자칫 잘못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어서이다. 하지만 바우쉬는 “적어도 시도라도 해봅시다. 포기는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며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 결과 ‘아리아’는 무대미술을 미학적으로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리아’ 이후 무대에서 물을 쓴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안무가와 무대 미술가들이 물을 아이디어에 포함할 수 있게 됐다. 니진스키는 말 많은 파리 관객의 권위를 조롱했고 바우쉬는 모험하지 않으려 한 스태프들의 고정 관념을 보기 좋게 뒤흔들었다.

우리나라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두 가지 춤이 있다. 두 춤 모두 전문 예인과 관련 없는데, 신라의 승려 원효 대사가 추었던 무애무가 첫 번째 춤이다. 무애무는 표주박을 본뜬 소도구를 들고 추는 춤인데,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라는 글에서 표주박을 무애라고 지었다고 한다. 무애무는 격식이 없는 쉽고 간단한 가무였다. 원효는 화엄 사상의 핵심을 쉽게 풀이한 무애가를 지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표주박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저잣거리에서 대중에게 불교 교리를 쉽게 전파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와 궁핍한 대중을 불교로 구원하려 한 원효의 실천은 당시 지배층 입장에서 하나의 도전으로 보였을 것이다. 한자를 해석할 수 있는 지배층의 전유물로 지배 이데올로기인 불교 교리를 백성들과 공유한다는 사실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백성은 지배층이 하라는 대로만 해도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원효는 부처의 뜻에 충실하게 승려의 도리를 실천하려 했다.

두 번째 춤은 수운의 칼춤이다. 동학을 창도한 수운 최제우가 지은 ‘검결’은 24구의 짧은 가사로 ‘칼 노래’라고 부른다. 최제우가 득도한 기쁨에 겨워 검결을 짓고 목검을 들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수운의 칼 노래와 칼춤에는 세상의 변혁을 꿈꾸는 소망이 담겨있었다. 갑오 동학농민전쟁 때 동학군의 군가로 애창되기도 했는데, 나중에 검결의 내용이 최제우가 처형되는 빌미가 됐다. 수운은 쇠약해진 왕조의 무능과 부패한 벼슬아치들의 수탈에서 벗어난 민중의 세상을 꿈꾸었다. 이 또한 지배층 입장에서 공고한 사회 질서를 부정하는 위험한 도발이었다. 서구 무용가들이 무용계, 예술계 안에서 기존 문법을 뒤흔들었다면, 원효나 수운은 춤이라는 예술적 도구로 세상을 깨우치려고 했다.

말과 글은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쉬운 데 비해 춤은 기본적으로 비언어적이어서 전달하려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춤의 비언어성은 다른 한편으로 전달할 의미와 해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원효나 수운이 알리고 싶었던 종교 교리와 진리는 말과 글을 넘어서는 무엇이며, 그것을 말과 글로 온전히 담을 수 없었다. 대중 관점에서 말과 글로 접하는 교리는 언뜻 알아듣기 쉬운 면도 있지만, 단어나 문구에 갇혀 논리 너머의 진리를 느낄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그런 이유로 원효와 수운은 춤으로 논리 너머의 진리까지 담아 전달하려 했던 것 같다.

네 가지 사례는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권력과 권위를 뒤흔드는데 춤을 이용한 경우이다. 말 없는 춤으로 권위의 말, 배제와 핍박의 언어와 질서에 도전하고 그것을 뒤흔들었다. 선거 기간 우리는 엄청난 말의 홍수에 시달렸다. 선택받은 쪽은 앞으로 자기가 다 해내겠다고 위세를 떤다. 진 쪽은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받아들이겠다고 말은 하지만, 아쉬움과 변명을 늘어놓기만 한다. 안 그래도 팍팍한 현실이 갈수록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얽히고설킨다. 이럴 때, 세상을 흐리게 하는 미혹을 떨칠 죽비처럼 내려치는 춤이라도 나타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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