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아름다운 연주자

권애숙 시인

  • 권애숙 시인
  •  |   입력 : 2024-04-30 19:00:32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니, ‘우정’하고 ‘허공’ 아나? 친구의 느닷없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게 뭔데, 무슨 이름이가? 으, 하모니카 교실에서 배우는 곡인데 노래를 모르니까 악보 보고 불기가 쉽지 않네. 친구의 푸념에 곧바로 검색을 했더니 들어봤거나 불러본 노래더군요. 녹음을 해서 보내주었습니다. 이참에 같이 하모니카를 배우자는 말에 잠깐 솔깃했지만 악기를 다루는 것은 전병이라 그냥 혼자 즐기는 게 낫겠다 싶어 가방 속에 넣어 둔 묵은 하모니카를 꺼내 닦았습니다.

악기를 배울 기회도 여유도 없었지만 어쩌다 연이 닿았을 때조차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하모니카는 휴대하기 쉽다는 이유로 가방 한 쪽에 끼워 다닌 지 수십 년째. 하지만 여전히 제대로 불 줄은 모릅니다. 어쩌면 내심 이 상태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 지도 모르겠어요. 옛 기억을 더듬듯 혼자서 음을 찾아 불다 보면 가끔 애틋한 소리가 흐르기도 하니 그럼 된 거지요. 그리움이 묻어있는 것들은 그 자체로 완성이 아니겠는지요.

중학생이 되고 첫 소풍날이었어요. 읍내 앞 큰 냇가에 소풍 가방을 풀어놓고 노래 한 곡 불러 달라 선생님을 졸랐지요. 새댁인 선생님은 자신의 중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이 흰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불러주던 노래를 잊을 수 없다며 모래 둔덕에 올라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냇물 소리를 따라 그윽하게 흐르던 ‘메기의 추억’은 그렇게 내게 와 닿았지요. 선생님과 선생님의 선생님까지 그립게 만든 그 노래는 여직 살아 나를 깨우고 흔듭니다.

요즘은 내 어여쁜 손녀를 위해 노래를 부릅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곁에서 자주 돌보아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고 아쉬워 만날 때마다 노래를 불러줍니다. ‘메기의 추억’이지요. 속 모르는 아들은 왜 늘 같은 노래만 부르느냐고 하지만 우선은 내 목소리를 각인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속셈이 더 있다면 먼 훗날에도 이 노래로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지요. 낯을 가리기 시작한 손녀가 오랜만에 보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도 ‘옛날에 금잔디’ 하면 안심한 얼굴로 안깁니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데는 아주 소소한 것이 열쇠가 되기도 하지요. 사람에 따라 기억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 경우 대부분의 기억을 소리로 소환합니다.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하나 목소리를 들으면 대개는 그들을 기억해 냅니다. 소리에도 지문처럼 성문이 있어 사람마다 고유의 형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득하게 먼 옛날에 듣던 목소리가 기억 속 선명한 무늬를 들추며 수십 년 저쪽 이쪽을 연결시켜주나 봅니다.

나는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시각적인 세계보다 청각적인 세계는 훨씬 더 깊고 넓지요. 소리가 주는 매력에 끌려 고요하게 눈을 감고 상상 그 깊은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생각지 못한 것들에까지 가 닿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설렘과 기쁨이 크지요. 더러 소음이나 소란이 뒤흔들어놓을 때도 있지만 그 따가운 소리의 뒤편까지 더듬어 들어가다 보면 또 다른 소리의 진원을 만나 귀를 틔울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누가 책을 보내주면 작품 중 일부를 발췌해 읽어 음성메일로 답장을 보냅니다. 투박한 사투리 발음에 매끄럽지 못한 낭독이지만 문자메시지나 전화 한 통으로 마음을 전할 때보다 진심이 더 진하게 가닿는 것 같습니다. 소리 내어 읽는 동안 내 떨림이 작품 속으로 스며들어 작가에게 그대로 전해질 수도 있겠지요. 그 작품을 쓸 때의 기억을 새삼 떠올리게 하여 감동의 시간을 갖게 하고픈 독자로서의 의도된 마음이기도 합니다.

변덕스런 시절을 건너오며 닫혔던 것들이 너나없이 문을 열고 생명의 색깔과 소리를 쏟아냅니다. 꽃들이 피고 지는 소리, 비오고 멎는 소리, 새 울고 바람 부는 소리. 그 속을 비집고 드는 소음마저 맑게 정화되는 철입니다. 어느 쪽도 무늬가 깊습니다. 이런 날은 세상의 파동에 몸을 실어 그 울림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어요. 아침의 숲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세상의 모든 소리와 하모니를 이루고 있나요? 당신은 이미 아름다운 연주자입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 금정구·경남 통영시, 정부 인구감소지역 추가(종합)
  2. 2광안리보다 북항 먼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3. 3부산시 내년 생활임금 확정, 시간당 1만2729원…3.7%↑
  4. 4청소년 흡연장 된 사하구청 제2청사 옥상…구, 침입 사실도 몰랐다
  5. 5금융기관 해킹 IP 상당수 ‘세탁용’
  6. 6보일러 배기통 막혀 세입자 참변…法 “집주인 9억 배상”
  7. 7부산 트리플 환승 요충지, 43층 주거 랜드마크 ‘우뚝’
  8. 8[포토에세이] 국사봉 전망대서 본 옥정호 물안개
  9. 9신용점수 만점자도 이자 비상…마통 평균금리 5%대 ‘쑥’
  10. 10SMR 인허가 심사기준 2032년께 마련? 골든타임 놓칠판
  1. 1암살자(들)·北 지뢰 여야 충돌…JYP ‘K-팝 축제 특혜’ 반박(종합)
  2. 2외모·학력차별…민간도 공공도 불공정 채용
  3. 3[2026 국감 브리핑] 자격유지검사 않는 고령운수자 1400명
  4. 4100억대 체임 국제신문 대주주, 국감 증인 채택
  5. 5조희대 “국회·대통령의 제청 간섭은 위헌”(종합)
  6. 6송곳검증 벼르더니…교통·시설公도 싱거웠던 시의회 청문회
  7. 7부산 국힘, 가덕도특별법 개정방침에 “국회에 책임 떠미나” 비판
  8. 8‘홈플러스 사태’ MBK 김병주, 국감 불출석 “회사 경영 관여 안 해”
  9. 9[속보] 여야, 문체위 국감서 ‘암살자(들)’ 공방…국힘 “감독 나와야” vs 민주 “창작 자유 억압”
  10. 10김정호 “부산·경남 맑은 물 공급을 위해 낙동강 수질개선·취수 다변화 해야”
  1. 1부산 트리플 환승 요충지, 43층 주거 랜드마크 ‘우뚝’
  2. 2신용점수 만점자도 이자 비상…마통 평균금리 5%대 ‘쑥’
  3. 3SMR 인허가 심사기준 2032년께 마련? 골든타임 놓칠판
  4. 4부울경 산학 기술력으로 누리호 성공 쐈다
  5. 5부산 외국인 관광객 400만 시대…‘머무는 관광’으로 질적 도약 모색
  6. 6누리호 5차 발사…군집위성 5기 모두 교신 성공(종합)
  7. 7홈플러스, 희망퇴직 돌입…MBK 경영권도 사라져
  8. 8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100조 시대’ 임박
  9. 9근무시간에 사주 상담…HUG 직원 면직 처분
  10. 10주진모 B·GET 대표 “민관펀드로 K-팝 북항 아레나 조성해 관광수요 창출”
  1. 1부산 금정구·경남 통영시, 정부 인구감소지역 추가(종합)
  2. 2광안리보다 북항 먼저…부캉이가 바꾼 관광지도
  3. 3부산시 내년 생활임금 확정, 시간당 1만2729원…3.7%↑
  4. 4청소년 흡연장 된 사하구청 제2청사 옥상…구, 침입 사실도 몰랐다
  5. 5금융기관 해킹 IP 상당수 ‘세탁용’
  6. 6보일러 배기통 막혀 세입자 참변…法 “집주인 9억 배상”
  7. 7“북항 모빌리티, 원도심 연계해야…환승센터 전면 재설계를”
  8. 8전재수 “사직구장, 야구 중심 생활체육 메카로…북항엔 돔 아레나”
  9. 9농약·고혈압약 등 취수원 오염물질, 부산시 선제 차단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8일
  1. 1SON A매치 최다골 대기록에도…뒤숭숭한 韓축구
  2. 2하현승, 계약금 16억에 키움 입단
  3. 3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4. 4롯데, KIA에 4-12 패…8회 7실점 ‘와르르’
  5. 5롯데, 6위 탈환 사활…3위 싸움 변수로
  6. 6조코비치, 올 첫 우승 눈앞
  7. 7장애인AG 결단식…“金 21개 이상 목표”
  8. 8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9. 9“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10. 10레이예스 200안타 달성에도…롯데, 두산에 4안타 그치며 패배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국제칼럼 [전체보기]
누구도 법 앞에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 없다
배지의 실력행사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유튜브 쇼츠 정치
통행료 면제 명암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누리호의 도전, 역대 최다 15기 위성 싣고 우주로
국제기구 인증보다 주민 체감 효과 중요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빚을 물려받는 사회
부자(富者)가 되고 싶다면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무(武)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