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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책 따로, 나 따로

  • 정상도 기자 jsdo@kookje.co.kr
  •  |   입력 : 2024-05-01 19:51:02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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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사람이…” 라고 말문을 연다면 그 다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본분에 어긋나거나 기대 이하 언행으로 실망했으니 각성하라는 지적이 이어질 터이다. “배운 사람들이…”는 개인을 넘어 그 부류나 조직 전체가 입길에 오르는 상황이다. 어떤 일을 놓고 배운 것이 그것뿐이라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게 됨을 뜻하는 ‘배운 지랄’에 닿으면 듣는 이나 말하는 이나 고약하기 짝이 없다.

국토교통부가 작성한 지난해 주택 공급 통계에서 19만 가구가 누락돼 정정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렇게 잘못된 통계를 바탕으로 두 차례나 주택 공급 대책이 나왔다. 정부 신뢰도에 크게 흠집이 생겼다. 집값 통계 조작 의혹으로 국토부 전직 장·차관과 고위 공직자들이 재판받고 있는 와중에 통계 누락까지 겹쳤다. 국토부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 싶다. 세금으로 일하는 엘리트 공무원 집단에서 빚어진 가당찮은 과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채용 비리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까지 자녀 채용 청탁이 밥먹듯 이뤄졌고, 채용 담당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직원 자녀들을 제식구로 만들었다는 것이 감사원 설명이다. 형법상 직권남용,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증거인멸과 청탁금지법·국가공무원법 위반 등 혐의로 대검찰청 수사를 받게 된 전·현직 직원이 27명이다. ‘좋은 정치를 지향하고 국민과 함께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선거관리위원회를 대를 이은 철밥통으로 만든 셈이다.

선관위 사무차장과 사무총장을 지낸 최고위직 인사의 아들을 ‘세자’라 칭하며 면접에서 만점 처리했다는 대목에선 말문이 막힌다. 역사 퇴행이자 지침서 오독이다. 배운 사람들인 만큼 조선시대 정치 교과서인 ‘대학’(大學)에 관해선 익히 들었을 것이다. 개인 수양과 사회를 바로잡는 방법으로 요약되는 ‘대학’을 탈탈 털면 수기치인(修己治人·자기를 닦아서 남을 다스린다) 네 글자가 되고, 마지막에 남는 글자는 경(敬)이라고 했다.

세자 문제로 갖은 고초를 겪은 조선 21대 왕 영조는 ‘대학’에 진심이었다. 65세인 1758년 ‘대학집주’에 직접 서문을 썼다. 그 가운데 ‘서자서 아자아’(書自書 我自我)란 구절이 있다. ‘책 따로, 나 따로’ 곧 ‘대학’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그 내용을 정확하게 모른다는 의미다. 이는 송나라 학자 주자(1130~1200)가 ‘대학집주’를 만들며 덧붙인 ‘독대학법’(讀大學法·대학 읽는 법)에서 따온 말이다. 국토부와 선관위 공무원은 선공후사(先公後私)란 본분을 곱씹을 일이다.

정상도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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