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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복면 시위

  • 강필희 기자 flute@kookje.co.kr
  •  |   입력 : 2024-05-06 19:16:00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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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이화여대 학생들이 본관 점거농성을 벌인 적이 있다. 대학 측이 고졸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미래라이프대학 신설을 구성원 동의 없이 밀어 붙인 게 화근이었다. 시위 못지 않게 주목받은 건 학생들의 복장이었다.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로 철저히 익명성을 유지했던 것이다. 신분 노출에 따른 불이익이나 억압을 피하는 동시에 기존의 운동권 시위 문화와 차별성을 노렸다는 분석이다. “당당하면 얼굴을 공개하라”는 비판과 “오죽하면 그러겠느냐, 새로운 시도다”라는 동정론이 부딪혔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식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가 마스크를 쓰고 신문받는 모습은 많은 서양인에게 엽기적인 장면으로 각인돼 있다. 얼굴을 가리는 행위에 미국이나 유럽인들은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프랑스는 공공장소에서 시위를 하면서 복면이나 마스크를 쓰는 걸 금지한다. 독일은 복면 착용뿐만 아니라 복면용 물품 휴대까지 금한다. 미국 역시 20여 개 주가 복면을 규제하고 있다. 한국도 과격 시위를 막기 위해 복면시위금지법을 여러 차례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집회 참가자는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여전히 유효한 때문이다.

미국 대학가에서 연일 반 이스라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7개월 넘게 이어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여파다. 지난달 17일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시작된 반 이스라엘 시위는 20여일 만에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고, 50여개 대학에서 2500여 명이 체포됐다. 시위대는 검은 마스크나 팔레스타인 전통 두건(카피예)이 외형상 가장 큰 특징이다. 과거 반전 시위가 백인 중심이었다면 이번엔 유학생 참가자가 많아 신변 노출이나 추적을 극도로 꺼린다는 것이다. 반 이스라엘은 얼굴을 가린 반면, 친 이스라엘은 얼굴을 드러낸 모습이 대조적이다.

익명이라는 단어 뒤에는 자유와 방종이 늘 따라다닌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시위대가 얼굴을 숨긴 채 과격한 행동을 함으로써 복면이나 가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서양의 복면 규제는 KKK단이나 나치즘 같은 인종차별, 시설물 파괴와 인신 공격을 마다 않는 스포츠 훌리건 등 경험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그런 사정이 드문 한국에선 복면 시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논쟁거리일 뿐 사회적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복면 그 자체에만 주목하고 그들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격이 되고 만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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