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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교제살인

  • 이은정 기자 ejlee@kookje.co.kr
  •  |   입력 : 2024-05-13 19:54:0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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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남녀 만남을 의미하는 데이트의 역사는 고작 100년이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여성의 집에서 만났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데이트라는 새로운 문화양식이 등장했다.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도시화로 하층민 주거환경이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비좁은 집을 벗어나 야외에서 만남을 가진 것이다. ‘데이트의 탄생’을 쓴 베스 베일리 미국 템플대 교수에 따르면 연애 장소가 사적 공간에서 공적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연애의 권력은 여성에게서 남성에게로 옮겨졌다. 남성이 돈을 가지고 데이트 장소, 먹을 음식, 이동 수단 등을 정하며 여성을 이끌었다고 풀이했다. 물론 양성평등 시대가 이루어지면서 이런 현상이 바뀌었다.

아름다워야 할 데이트가 폭력이나 살인 사건으로 비화하는 일이 잦다. 지난 6일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에서 수능 만점을 받은 명문대 의대생이 여자친구가 이별을 고하자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최근 신상이 공개된 김레아(26)는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하고 그의 어머니까지 중상을 입혔다. 지난 1월 부산 부산진구 오피스텔에선 20대 여성이 폭행과 스토킹을 일삼던 전 남자친구와 함께 있다가 추락사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2020년 8951명에서 지난해 1만3939명으로 3년 새 55.7% 늘었다. 폭행 상해 스토킹 등 범행 유형도 다양하고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관련 범죄가 늘면서 교제 도중, 혹은 이별 후 탈 없이 안전하게 이별할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몰래 이사하고 연락 끊기’ ‘공공장소에서 이별 통보하기’ 등 조언이 잇따르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교제폭력과 살인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나 공적 대책은 미비하다. 여러 번 데이트(교제)폭력특례법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교제폭력은 주로 폭행·협박죄로 입건하는데 반의사불벌죄이다.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내면 처벌받지 않는다. 하지만 해외는 교제폭력을 강력하게 대응한다. 미국은 1994년 여성폭력방지법 제정 이후 피해자 보호 범위를 확대해왔다. 영국은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클레어 우드의 이름을 따 가정폭력 전과를 공개하는 클레어법을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13일 교제폭력에 대해 “경찰이 나설 부분이 있겠지만 법·제도 측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진보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제폭력을 막으려는 정치권과 사회 구성원의 관심이 절실하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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