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주년을 기념해 가족과 일주일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서점을 혼자서 운영하다 보니 긴 시간 문을 닫아야 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성공한 자영업자들이 강조하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최소 2년 동안은 단 하루도 문을 닫지 않았다’는 내용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겨우 1년을 채운 시점에, 아직도 책만 팔아서는 인건비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루도 아닌 일주일 동안 여행을 다녀온다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 기념일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부모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퇴사를 결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도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걱정은 됐지만 일주일 동안 문을 닫는 것으로 결정했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여행을 떠나야 하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 묻어났는지 ‘요즘, 고민 있으세요?’ 하며 묻는 이들이 생겨났다.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하며 넘겼지만 질문을 받는 횟수가 늘어나자 여행 기간을 줄이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때 나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손님이 이틀 정도는 본인이 ‘일일 책방지기’가 돼 문을 열어보겠다는 제안을 했다. 손님도 먼 훗날 자기만의 책방을 여는 것이 꿈이라며, 책방지기의 하루를 체험해 보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다.
순간 솔깃했지만 걱정이 앞섰다. 영업 공간을 타인에게 온전히 맡긴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지만 책방지기에 큰 기대를 갖고 지원했을 이에게 손님이 오지 않는 고요한 서점의 현실을 보여주게 될까 봐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동네서점 대표들의 SNS를 보게 되면 ‘하루에 다섯 권만 팔아도 행복할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내가 운영하는 서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는 부족한 모습을 공개하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 모든 걱정과 고민은 ‘책’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한다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책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곁을 내어주는 연대의 가능성’이고 ‘흔쾌히 맞이하는 환대의 연속성’이었다.
한 명이라도 지원하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올린 일일 책방지기 모집 공지는 하룻밤 사이에 스무 명이 넘는 이가 지원을 하면서 마감했다. 독서모임 참가자로 오래 관계를 맺었거나 자주 방문한 손님도 있었지만, 아예 처음 찾는 분도 있었다. 문장 입간판 작성법, 도서 택배 정리, 손님 응대 및 음료 제조법, 결재 프로그램 사용법, 마감 청소 등 단 하루지만 꼭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안내를 했다.
여행을 떠난 월요일부터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토요일까지 매일 새로운 일일 책방지기가 서점을 지켰다. 특별한 한 주를 기념하기 위해 메인테이블에는 ‘일일 책방지기’ 코너를 따로 만들었고, 책마다 추천하는 이유도 정성스레 작성했다. 자신의 추천 책을 판매하는 기쁨, 낯선 손님과 책으로 소통하는 즐거움, 좋아하는 음악과 향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특별함 등 그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서점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손님으로 북적였던 하루도 있었고, 지루한 침묵을 견뎌야 했던 날도 있었지만 그들이 남긴 일지에는 책방지기의 하루를 경험한 것에 대한 특별함이 묻어났다.
일 년 남짓 서점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사람에 대한 마음의 빚만 늘어간다는 것이다. 갚아야 할 것이 돈이 아닌 마음에 대한 보답이라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누군가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은 나를 한없이 약하게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 한 일일 책방지기가 써놓은 일지에서 “책만큼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고 느끼며”라는 문장을 만났다.
서점을 지켜준 이들 덕분에 가족과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고 38권의 도서 판매 매출 50만 원도 선물 받았다. 이런 선의를 전하는 이들 앞에서는 나의 약함을 내보여도 괜찮지 않을까. 기꺼이 나의 약함을 내보이고, 너의 약함을 받아들였을 때 우리의 관계는 깊어지지 않을까. 그런 마음들에 기대어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서점의 10주년을 기념하게 되는 날도 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