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으로 간단한 생필품을 구매할 때 하자 없는 물품을 제때 배송하는지, 환불이 쉬운지 등 거래업체의 신뢰성을 따져 본 후 구매한다. 하지만 주식거래를 할 때는 거래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않고 주식이나 대금을 못 받을 걱정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결제 불이행에 대한 걱정 없이 주식거래가 가능한 걸까.
이것은 거래소, 정확히는 청산기관(clearing house)이 모든 거래의 결제를 보증해 주기 때문이다. 청산기관은 투자자 간 체결된 거래에 대해 채무를 인수해, 매수자에 대해 매도자가 되고 매도자에 대해 매수자가 된다. 모든 거래의 상대방이 된다는 의미로 청산기관을 중앙거래상대방(Central CounterParty, CCP)이라 한다. 청산(淸算, clearing)은 거래(계약) 체결로 형성된 채권/채무관계를 확정한 후 증권과 대금을 계산하고 수수(결제)해 거래 관계를 종결하는 일련의 절차로, 청산 담당 기관은 모든 증권거래의 거래상대방(CCP)으로 증권과 대금의 결제가 완결되도록 책임을 진다.
청산 기능은 1770년대 런던 은행들 간에 수표(cheque) 결제에서 시작됐다. 수표 발행 증가에 따라 은행 간 자금집행 업무가 급증하게 되자 다수 은행들이 청산기관에 모여서 동시에 은행별로 주고받을 금액을 계산해 잔액만 수수(차감결제)했다. 증권시장에서도 주식거래가 급증하면서 1870년대에 증권 및 자금의 차감결제를 통해 위험포지션과 결제 규모를 줄이기 위해 런던증권거래소(LSE)가 처음으로 청산 기능을 도입했다. 비슷한 시기에 커피 선물 등을 거래하던 파리의 파생상품거래소도 청산 기능을 도입하고 곧바로 결제이행 보증을 위해 CCP 기능을 최초로 도입했다. 19세기 후반 미국의 증권 및 파생상품 거래소들도 청산 기능을 도입한 후 1920년 중반부터 CCP 기능을 추가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의 자회사 청산기관(BOTCC)이 CCP 청산기관의 발전을 선도하면서 아시아·유럽 등의 자본시장에서 CCP 청산기관 모델로 성장했다.
국내 증권시장에서는 1962년 증권거래법 제정으로 거래소에 결제이행 책임이 부여됐고 1974년부터 차감결제를 실시했다. 작년 국내 주식·증권상품시장에서는 일일 700만 계좌에서 3300만 건 체결로 약 23조 원이 거래됐으나 차감결제로 결제 대금을 6900억 원으로 대폭 축소해 위험 노출 규모를 줄이고 결제 효율성을 높였다.
CCP 청산은 청산 상품 간 위험상쇄 및 차감결제 효과로 규모의 경제 및 범위의 경제 효과가 매우 크다. 이에 1970년대 이후 청산기관은 거래 플랫폼과 달리 합병을 통해 국가별 단일 CCP 청산기관으로 대형화·집중화되는 추세다. 영국 런던청산기관(LCH), 독일 유렉스청산기관(Eurex clearing), 일본청산기관(JSCC)과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가 대표적이다.
금융위기 이후 CCP 청산 상품이 금리스와프·신용상품·외환선도 등 장외 파생상품 거래로 확대됐으며, 주요 선진국에서는 장외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도 CCP 청산하고 있으며 미국은 내년부터 장외 국채 거래도 CCP 청산에 추가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국제적인 추세에 따라 2005년부터 한국거래소로 장내 증권 및 파생상품 거래의 CCP 청산 업무가 통합됐으며 2014년부터 장외 이자율스와프(IRS)까지 청산 업무를 확대했다. 지난 2021년에는 청산 업무의 독립성 및 전문성 제고를 위해 청산결제본부를 신설하고 청산상품 확대 및 리스크관리 제도의 선진화를 추진하고 있다. 내년에 개설될 대체거래소(ATS)의 주식거래 청산 업무도 수행할 예정이며 장외 외환파생거래의 청산 업무도 추진 중이다. 자본시장에서 거래되는 다양한 상품 간 위험상쇄 효과와 결제 안정성을 위해서는 미국 유럽처럼 RP 국채 등 장외 증권거래와 장외 선도·옵션 거래 등 다양한 장외 파생상품까지 CCP 청산 상품으로 확대해야 한다. 런던 프랑크푸르트 도쿄 시카고 등에 소재한 글로벌 CCP 청산기관이 도시 브랜드를 높인 것처럼 한국거래소 청산결제본부가 부산의 금융중심도시 위상 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