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고래마을에 고래는 없지만

안지숙 소설가

  • 안지숙 소설가
  •  |   입력 : 2024-06-04 18:34:22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 몇 달간 ‘장생포 아트스테이’에서 지냈다. 한때 최적의 고래 서식지였고, 우리나라 포경업의 중심지로 유명했던 그 장생포 맞다. 지금의 장생포는 고래잡이로 번성했던 시절을 지나 고래가 사라진 고래마을이다. 고래뿐이랴. 고래와 함께 인생을 살아온 선원들도 거의 사라졌고, 자신의 배가 대형 고래를 끌고 오기를 목 빼고 기다리던 선주도 사라졌다.

일본에 고래고기를 수출하면서 장생포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으나, 1980년대에 들어서며 고래가 잡히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수 세기에 걸쳐 씨를 말릴 정도로 잡아대는 바람에 주된 포획 대상이던 참고래의 개체수가 급감한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는 고래 개체수가 회복될 때까지 고래 종 전체의 사냥을 금지했고, 장생포는 하루아침에 황량한 어촌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장생포를 고래마을이라 일컫던 모든 게 사라진 셈인데, 장생포는 과연 안녕할까. 고래문화재단에서 입주작가를 공모할 때 고래를 소재로 글을 써주길 바라는 듯해 자료를 찾아보고는 궁금해했던 점이다. 궁금증은 언덕 위에 앉은 아트스테이에 입주하는 첫날 밤 반쯤 풀렸다. 옛 신진여인숙의 원형을 살려 재단장한 건물은 오랜 세월 해풍을 견딘 듯 무겁고 예스러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좁고 기다란 복도를 지나, 이불을 올려놓을 수 있는 선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방에 누우니 출항을 앞두고 하룻밤을 묵어가는 뱃사람이 된 양 마음이 설레면서도 휑한 기분이었다. 창밖에서 뿌우우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고, 고된 뱃일에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만선의 부푼 꿈을 꾸었을 뱃사람들의 모습이 잠자리를 어지럽혔다. 장생포의 숨결과 소리와 냄새에 포획되는 느낌이었달까.

입주 이튿날부터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면서 관광명소로 위상을 뽐내는 장생포 마을 곳곳을 둘러보았다. 실물 고래골격이 전시돼 있다는 고래박물관을 먼저 찾았다. 포획 당시 전체 길이 12.4m, 실제 무게가 14.6t에 달했던 브라이드고래의 골격 앞에 서자, 이 어마어마한 존재를 멸종 지경으로 내몬 인간에 대해 복잡미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전시관을 돌며 포경 관련 유물과 자료를 둘러보고 고래생태체험관으로 건너갔다. 돌고래 수족관이 있는 곳으로, 먹이를 주는 시간이어서인지 관람객이 몰려있었다. 먹이를 삼킨 돌고래들이 사육사의 신호에 따라 뱅뱅이를 돌고, 자맥질하다 세차게 점프하자 관람객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몇 해 전 터키 안탈리아의 지중해에서 본 고래들이 생각났다. 푸른 바다가 온통 제 것인 양 신나게 뛰어오르던 고래를 보며 느꼈던 환희와 자유로움을, 생명체가 발산하는 아름다움을 수족관의 돌고래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입주 초기에 오호츠크해와 동해를 오가는 한국계 귀신고래가 장생포로 떼 지어 몰려오는 장면을 내 소설의 절정으로 삼아야지 했다. 입소하고 마을을 탐색한 지 며칠 만에 생각을 바꿨다. 아무리 픽션이라도 가당치 않은 희망을 그릴 수는 없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개체수가 늘어난다 해도 장생포와 인근 해안에서 귀신고래는 물론이고 참고래, 밍크고래가 떼 지어 헤엄치는 장관을 볼 수 있는 날은 좀체 오지 않을 것이다. 고래의 유전자 속에 자신들을 향해 작살을 날리고, 포를 쏘던 인간에 대한 기억이 각인돼 있을 텐데, 고래가 바본가. 인간 다음으로 영리한 동물이 고래다.

장생포가 진정 ‘고래와 함께하는 마을’이 되려면, ‘관광’이 아닌 ‘보호’에 역점을 두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실상 고래는 평생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축적함으로써 기후 위기 타파에 공헌하는 귀하고 고마운 존재 아닌가. 그 고마운 존재를 멸종위기에 몰아넣은 것을 사과하고, 고래의 자유와 생명을 보호하는 데 장생포 고래문화특구가 전 세계를 대표해 앞장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런 기대가 가능하니 ‘장생포는 안녕할까’ 라는 질문은 무례하다. 고래는 없지만 고래마을 장생포는 건재하다. 아니, 장차 건재할 것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2. 2“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3. 3부산·울산·경남 일부 비…낮 최고 23∼26도
  4. 4“술값 내라” 여러 차례 여자친구 때릴 듯 위협한 20대 집유
  5. 51244회 로또복권 1등 18명…당첨금 16억469만 원
  6. 6‘부캉이’ 그물도 무용지물…하루만에 수로 안으로
  7. 7김민석 “차기 총선 주 싸움터는 한강 아니라 낙동강”
  8. 8[속보]만취상태로 예인선 오르던 선원 추락사…법원 “직무상 재해”
  9. 9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40.8원… 전주보다 0.9원 ↓
  10. 10LH 미매각 토지 22조 육박…19년간 못 판 상업용지도
  1. 1김민석 “차기 총선 주 싸움터는 한강 아니라 낙동강”
  2. 2李대통령, ‘정청래 그만 괴롭히라’는 글에 “괴롭힌 거 아냐”
  3. 3軍 “北, 동해상으로 미상 발사체 발사”
  4. 4추미애 “김지용, 언제든 국민과 정의에 등 돌릴 수 있는 자”
  5. 5靑, 北 탄도미사일 발사에 긴급회의…“안보리 위반, 즉각 중단 촉구”
  6. 6‘교정시설 조성 지원 특별법’ 발의…부산구치소·교도소 통합 뒷받침
  7. 7[속보] “전두환 내란 아냐” 김태규 ‘제명 촉구 결의안’의결
  8. 8김민석 부산 찾아 “전재수 시정 성공시키겠다”
  9. 9李대통령 “우크라, 상대국 원수 거짓말쟁이 만들어…사과 거부시 추가 조치”
  10. 10부산 국힘 “보좌진 유죄 선고…전재수 시장, 시민에 사과해야”
  1. 11244회 로또복권 1등 18명…당첨금 16억469만 원
  2. 2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40.8원… 전주보다 0.9원 ↓
  3. 3[속보] 영화 ‘암살자(들)’ 투자 외부 개입 논란에…국책은행 “사실무근”
  4. 4"삼전닉스 ETF 출시 때 투자자 보호 대신 시장 확대만 급급"
  5. 5당국, '해킹사고' 확산에 내일 금융업권 긴급소집
  6. 6예가람저축은행 해킹 피해로 고객 4만명 정보 유출
  7. 7현대캐피탈도 해킹 피해…주택대출 모집인 146명 개인정보 유출
  8. 8“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앞서 정부 약속부터”(종합)
  9. 9삼성중공업, 올해 LNG운반선 20척 수주. 글로벌 경쟁력 입증
  10. 10"건보료 재정누수 심각…1000만원 초과 고액체납 2배 급증"
  1. 1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2. 2부산·울산·경남 일부 비…낮 최고 23∼26도
  3. 3“술값 내라” 여러 차례 여자친구 때릴 듯 위협한 20대 집유
  4. 4‘부캉이’ 그물도 무용지물…하루만에 수로 안으로
  5. 5[속보]만취상태로 예인선 오르던 선원 추락사…법원 “직무상 재해”
  6. 6LH 미매각 토지 22조 육박…19년간 못 판 상업용지도
  7. 7“바다로 안 돌아갈래”…‘부캉이’ 추가 구조 없이 당분간 움직임 주시
  8. 8[속보] 투자사기 치고 돈세탁은 카지노 칩으로…40대 징역 1년8개월
  9. 9부산에 하나 뿐인데…‘부산예대’ 내년 2월 문 닫는다
  10. 10“택시부제 풀었더니 매출이 쑥”…밀양시, 시범운영 거쳐 전면 해제
  1. 1“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2. 2[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3. 3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4. 4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5. 5한국, AG 남자 축구 4회 연속 금메달…결승 한일전 1-0 승리
  6. 6서채현, 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리드 금메달
  7. 7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8. 8KLPGA 대회 처음 부산서 여는 HJ重… “지역과 상생할 것”
  9. 9메치고 쏘고…한국 유도·양궁 ‘금빛 데이’
  10. 10한국 여자 양궁 단체전 인도에 져 은메달…8연패 무산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국제칼럼 [전체보기]
개헌 말하려면 헌법 준수부터
나림 이병주, 더 일찍 법(法)으로 통(通)했다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영산회상, 불교음악에서 풍류음악으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민원인(들)
AI 패권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직업병에 대한 자세, 무지와 고의 사이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생곡소각장 정치적 셈법보다 원칙대로 추진해야
알래스카 LNG, 협력하되 국익이 최우선이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인공지능(AI)과 인류 멸종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