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어리석게 살다 간다

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 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  |   입력 : 2024-06-04 18:48:27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고교생 시절 마냥 억울했던 한때, 그러니까 한참 오래전 일이다. 일본 와세다대 영문학과 출신이라는 소문이 은밀히 돌던 영어 선생님의 수업 시간이었다. 그러잖아도 멋진 분이셨다. 구문 분석도 개성이 있었고 번역이라도 할작시면 교과서가 바로 시집으로 둔갑하는 경지였지만 학생들은 입시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 수업 시간 동안 아예 대놓고 다른 문제집이나 펼쳐보는 형국이었다. 거개의 학생들이 강의를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 미안해서 나는 강의 시간 내내 선생님과 눈을 맞추려 애를 썼는데, 이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강의할 때 청중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딴짓한다는 느낌이 들면 순간 무안해져서 하던 말도 꼬이는데,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당해봐서 안다.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분이셨는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이지만 동기생들은 냉담했다. 입시, 오직 일류대학 합격만이 고등학교의 존재 이유였고 열등반 담당 교사는 은근히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학교는 그야말로 장래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고 기르는 일이 기본이어야 마땅하다. 왜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가, 내 몸 사용법, 퇴비 만드는 법, 채소를 기르는 법, 상대를 존중하고 존중받는 법, 옷을 짓는 방법, 약자에 대한 배려심 등. 내가 생각할 때 실제 삶에 긴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가르치지 않았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깨우치고 우리의 미래를 세워야 하는데, 우리 학교는 그러지 않았다. 사람은 다 다르다. 그런데도 각양각색 천차만별인 학생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고 줄 세우는 일에만 오직 진심이었다. 영어 과목만 해도 영문으로 쓴 글을 읽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양성하는 게 아니라 난해한 문항과 단어를 통해 학생의 등급을 나누고 서열을 정하는 기능에만 열심이었다. 그렇게 정해진 일방적인 서열에 따라 진학할 대학이, 미래가 정해졌다.

강의할 의욕을 잃어버린 영어 선생님은 창밖 붉게 물든 노을을 한참 바라보다가 돌아서며 말을 꺼냈지만 교실은 시끄러웠다.

“이제 돌아갈 날이 가까웠다.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 흩어질 테고 영혼은 우주 어디엔가 있는 영혼의 고향으로 갈 거다. 어디인가는 기억 못 하지만 광활한 우주 저 어느 별, 내 영혼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거야. 이번 여행도 즐거웠다. 언젠가 또 다른 여행을 하게 되겠지. 그건 지구일 수도 있고 다른 별일지도 몰라.”

선생님의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학생은 몇 안 되었다. 다들 뒷전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정말 그럴 거라고 믿었다. 나는 아직 어렸고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저 어둠 속 광활한 우주, 절대자의 섭리, 윤전하는 숙명. 만일 우주가 끝이 있다면 그 밖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무한하다는 걸 도대체 이해할 수 있는가. 전생을 기억하고 말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의 전생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어느 별에서 왔을까.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 곤히 잠든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 고운 영혼이 숱한 사람들 가운데 하필 나를 찾아와 깃든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워 절로 울음이 터지고 눈물이 났다. 이 고마운 영혼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모시마. 그런데 내가 이 아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랑 결혼했다면 이 생명은, 이 영혼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다른 육신이라도 나를 점지한 이 영혼이 찾아왔을 거야. 그러나 사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상이었다.

이제 이만큼 철이 들어 세상을 좀 더 알게 되고 자연을 들여다보고, 생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끝에 얻은 내 결론은 ‘결코 그렇지 않아’ 였다.

세상을 지배하는 초자연적 존재 같은 것은 없다. 자연에는 의도가 없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시건방이 지구를, 우리 삶의 터전을 이 꼴로 망가뜨리지 않았는가. 인간도 내가 있는 집 지붕에 잠깐 앉아 울다 가는 큰부리까마귀랑 진배없다. 오히려 조금 더 나은 지능이 초래한 부작용이 문제다.

그 경지를 알지 못하니 숱한 허구와 신화가 탄생하고 믿고 속고 속이며 패거리 짓고 헛된 탐욕과 패악질에 다투고 죽이고, 다들 그리 어리석게 살다 갔고 여전히 또 그럴 거라는 사실이 암담하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폭발음 뒤 불길…인근 7000명 대피(종합)
  2. 2정부, 공연장 겸 돔구장 추진…북항 돔 아레나 ‘기회’
  3. 3부산시, 퐁피두 분관·라 스칼라 공연 백지화(종합)
  4. 4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5. 5이기대 예술공원 사업도 차질
  6. 6‘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7. 7울산 온산 화학공장 화재
  8. 8호텔 셔틀 타고 황령산 야경 보러가요
  9. 9변성완·박상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송치
  10. 10구·군은 맘대로 불법 현수막…민간엔 과태료 폭탄
  1. 1‘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2. 2신임 靑 비서실장에 임광현 국세청장(종합)
  3. 3김민석 격주 부산행 PK 민심잡기…부마항쟁 기념식 찾는다
  4. 4김지용 “정치검사 1호는 尹”…과거 행적 놓고 與 집안싸움(종합)
  5. 5박형준 “새로 할 일 없는 사람들, 전임 시정 뒤집기 집착”
  6. 6여도 야도 농지 전수조사 질타…임대수탁 부작용 등 지적
  7. 7이 대통령, 부캉이 보러 북항 방문…전재수 ‘돔 아레나’ 건의
  8. 8이헌승 “국제신문 100억대 체임 구속사유”…장관 “엄정 대응”
  9. 9“북극항로 가능성, 시범운항서 확인”(종합)
  10. 10김민석, 주진우 겨냥 “막말 땐 자격 정지 추진”
  1. 1호텔 셔틀 타고 황령산 야경 보러가요
  2. 2부산 호텔업계 “바가지요금 논란 되풀이 막자”
  3. 3금융사 AI해킹 16곳으로 늘어나…130곳은 ‘보안 미흡’
  4. 4올해 자사주 62조 태웠다…‘삼전닉스’ 과반
  5. 5현대차, 인도에 20조 통 큰 투자…생산·연구개발 거점 강화
  6. 6친환경에너지·AI기술 각축…업계 트렌드 읽고 미래로 항해
  7. 716, 17일 ‘부산금융주간’…청년교육·세미나 등 다채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14일
  9. 9市 기관장 하세월 임명절차…청문 통과해도 공백
  10. 10공공기관 이전 연내 발표…“산은·금감원 반드시 부산 와야”
  1. 1폭발음 뒤 불길…인근 7000명 대피(종합)
  2. 2부산시, 퐁피두 분관·라 스칼라 공연 백지화(종합)
  3. 3변성완·박상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송치
  4. 4구·군은 맘대로 불법 현수막…민간엔 과태료 폭탄
  5. 5부산도시철 교대인력 공백 떠안은 직원들…현장 아우성
  6. 6市 ‘시간 쪼개기 계약’ 채용 관행 전면 손질
  7. 7부산중수청장 “지방청 중심 수사…기존 검찰 구조와 다를 것”
  8. 8[단독] “어? EBS서 봤던 문젠데” 부산 고교 118명 중간고사 재시험
  9. 9“나노산단 분양률 50% 고무적…미래전략 앵커기업 유치 목표”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5일
  1. 1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2. 2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3. 3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4. 4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5. 5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6. 6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7. 7프로야구 한화, 신임 사령탑으로 류지현 국가대표 감독과 계약
  8. 8HJ重·동부건설, 소외층·골프 꿈나무에 3000만원 기부
  9. 9어깨 부상 김우민, 수술 대신 재활로
  10. 10최동원 어린이 야구교실, 출범 11년 만에 프로선수 배출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귀 기울일 것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기고 [전체보기]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다시 영화의 시간
사형 생중계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퐁피두 중단·라 스칼라 보류, 새 문화 대안 필요하다
정부와 정치권, 산은 부산 이전 강력한 의지 보여라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