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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도청도설] 콜포비아

  • 강필희 기자 flute@kookje.co.kr
  •  |   입력 : 2024-06-09 19:47:2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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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부산국제영화제(BIFF)에도 초청된 영화 ‘데니스는 통화 중’은 전화 중독에 빠진 현대인을 재치 있게 꼬집은 블랙 코미디다. 미국 뉴욕에 사는 청춘 남녀 7명은 오늘 점심에 뭘 먹었는지 어떤 속옷을 입었는지 서로에 관해 모르는 게 거의 없다. 하루 수십번 시도 때도 없는 전화 통화 덕분이다. 그러나 이들은 수년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계획한 게 연말 파티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식당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부산의 한 연구기관이 텍스트 전용 비대면 상담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활성화 하는 과정을 잠시 엿볼 기회가 있었다. 가정 학교 직장 등 주제 제한 없이 온라인으로 고민거리를 남기면 전문가를 1 대1로 매칭해주는 방식이었다. 글로 질문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게 번거롭지 않을까 싶어 회의적인 의견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그러나 동석한 전문가나 기관 담당자는 연령이 낮을수록 이런 형태의 소통에 익숙하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대면이 싫어 전화에 매달렸던 세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이마저도 부담스러워 텍스트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콜포비아’는 ‘전화’(call)와 ‘공포’(phobia)의 합성어다. 단순히 전화 걸기나 받기를 귀찮아 하는 단계를 넘어 전화벨만 울려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통화보다 문자나 SNS 메시지, 이메일을 고집하는 증상을 말한다. 최근 미국 경제지 ‘월 스트리트 저널’은 ‘휴대전화로 전화받는 것만 빼고 모든 걸 하는 회사원들’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짚었다. 실제로 인구조사국 조사 결과 미국 성인 3명 중 2명은 주간 통화량이 4통 이하이고, 5명 중 1명은 아예 한 통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모바일 데이터 사용량은 2012년부터 10년간 50배로 폭증했지만 음성통화량은 8.7% 느는데 그쳤다.

콜센터나 민원 부서 직원처럼 항상 전화에 시달리거나 공포스러운 경험이 있는 특정 직업군이 아닌데도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최근엔 국내 유명 가수가 친엄마와도 통화가 어렵다고 털어놔 관심을 받았다. 국적 세대 직업 불문이다. 콜포비아는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 공식 정의된 질병은 아니다. 재택근무 무인점포 키오스크 등 비대면이 규범화해 가는 현대 사회의 단면일 뿐이다. 그러나 얼굴을 직접 보거나 목소리를 들으면 인간은 말의 내용만이 아닌 어조 표정 등 비언어적 정보를 캐치할 수 있다. 콜포비아가 가려진 진실이나 전하고자 하는 진심을 알아내는 공감능력의 약화로 이어질까 우려되는 지점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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