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가족, 서로를 보듬다

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 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  |   입력 : 2024-06-11 19:31:37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결혼한 지 50년 만에 각방을 쓴다. 서로 방을 달리해 잠자다 보니 편하긴 하지만, 허전하기도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서로가 낯설어 보인다.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서로의 온기가 없어서 그럴 것이다. 기능적으로는 편하고 자유로운데 심리적으로는 서로의 체온이 그리워지는 이 관계성의 역설에 속으로 피식 웃는다.

이런 때일수록 자식들을 품 안에서 키운 그때가 그립다. 모두 두 살 터울이라 자주 다투는가 하면, 밥상에 둘러앉으면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려고 눈을 부라리기 일쑤다. 그래도 남처럼 다투다가도 돌아서면 금세 풀리고 만다. 한 핏줄이라는 유전인자 때문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서로를 보듬고 다독인다. 그런 자식들이 어느 정도 머리가 크니 결혼을 하거나 더러는 일거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져,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부부만 덜렁 남아 텅 빈 집을 지키고 있다. 이런 파편화된 가족의 모습에 넌덜머리가 나 상상으로나마 대가족의 모습을 복원한다.

낡은 기와의 한옥에 허구의 대가족을 불러 모은다.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을 편성한다. 거기에다 시어머니와 여고 동창인 홀로 된 친정엄마까지 한방을 쓰게 한다. 한 챕터에 가족 구성원 한 사람씩의 서사를 엮어나가는 일종의 연작소설 형식이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화자는 시적인 감수성이 번뜩이는 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소녀이다. 그 아이는 1년 동안 사랑의 열병 헤어짐 이별 죽음 이직 등의 아픔을 겪으며 성장해 나간다. 서너 해 전에 내가 대가족의 삶의 풍경을 복원하기 위해 허구적 상상력으로 완성한 가족소설 ‘감나무집 동백꽃’의 서사이다.

핵가족 시대 각자도생의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는 요즈음 젊은이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원시 공동체적 삶의 풍경으로 보일진 모르지만 내게는 삶이라는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밸러스트 스톤’이나 다름없다. 살아가다 지치고 외로울 때 내 인생의 중심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유년의 대가족 풍경이다. 낳자마자 남도 섬마을의 큰댁에 맡겨져서 유년기를 보낸 그 기억은, 도회지 거친 풍경에서도 끝내 순수함을 지키게 해준 원형적 모성이나 다름없었다. 내 삶을 오롯이 가꾼 것은 큰댁에서 보낸 유년기 대가족 풍경이었다. 그것은 곧 내 문학의 원형질이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간혹가다 엇길로 들어서지 못하게 막아준 도덕적 방풍림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우리는 지금 가족 해체의 메마른 풍경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아니고 피붙이 가족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라는 편협한 관계성 속에서 겨우겨우 살아간다. 아니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셈이다.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공동체적 윤리에 대한 복원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나가다 옷깃 스치면 인연이라는 도덕성은 이미 옛말이 되었고, 지금은 부지불식간에 옷깃이라도 스치면 시빗거리가 되는 살풍경의 시대를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대가족의 온기를 느끼지 못한 채 자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서로의 온기를 느껴야 보듬고 다독일 수 있는데, 그런 기억 인자가 없으니 날 선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의 40년 동안을 이어오고 있는 전국 규모의 문학단체가 하나 있는데, 이 단체의 작별 인사는 아주 독특하다. 서로를 보듬고 다독이며 귓속말로 인사를 건네고 헤어지는 독특한 인사를 한다. 그것은 곧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의식이다. 대가족의 원형질적 모성을 회복하는 의식인 셈이다. 즉, 우리 모두가 바다가 되는 것이다. 강에 휩쓸려 온 온갖 더러움을 바다는 보듬어 정화시킨다. 그래서 철학자 니체는 바다를 가족의 모든 안쓰러움을 보듬는 모성에 비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대가족을 버티고 유지하는, 선박의 평형추인 밸러스트 스톤일지도 모른다.

내자와 각방을 쓴 지 보름 가까이 되지만 가끔은 서로의 온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개별적 편안함보다 귀찮지만 약간의 부대낌이 필요할 때도 있다. 우리 마음 저 밑바닥에는 서로 보듬고 다독이며 삿된 것을 정화시켜 주는 대가족의 원형적 인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감나무집 동백꽃이 있는 옛스런 한옥이 그립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3. 3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4. 4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5. 5“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6. 6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7. 7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8. 8[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9. 9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10. 10[사설]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1. 1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2. 2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3. 3민주 “조희대 국정조사 실시”…국힘 “탄핵보다 더 비열”
  4. 4국힘 “공소취소 특검 전에 3+1 조작 특검 국조부터”
  5. 5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6. 6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7. 7"농지조사 송 장관이 제안" 이 대통령에 野 "불리해지니 장관 탓"
  8. 8김정호 "국제신문 100억 체불 지광, 동행명령장 거부시 고발조치"
  9. 9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10. 10김지용 중수청장, 또다시 국무회의 참석
  1. 1“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2. 2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 무상 교체 방침(종합)
  3. 3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최병호
  4. 4강연 통역하고 요금 모니터링…관광·마이스산업 AI 바람
  5. 5내년 상반기 재가동…한빛 등 7기도 연장 속도(종합)
  6. 6부산시 벤처펀드 받은 유망기업 ‘쑥쑥’…IPO 도전
  7. 7“임기내 부산 1호 유니콘기업, 기업공개 2건 목표”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27일
  9. 9부산경실련 “산은 이전 없다는 금융위원장 발언 유감”
  10. 10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무상교체 방침
  1. 1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2. 2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3. 3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4. 4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5. 5[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6. 6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7. 7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8. 8“국제신문 회생 더이상 미룰 수 없어”…전재수 시장, 지광에 공식서한 보내
  9. 9법원 “부하직원 횡령, 감독 안 한 상급자 견책 정당”
  10. 10[한 손 뉴스] 변호사 업무 재개한 홍준표, 대선 경선 관계자 변호 맡아(종합)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3. 3‘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4. 4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5. 5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6. 6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7. 7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8. 8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9. 9[뭐라노] 데이터 기반 똑똑한 야구·수비강화…롯데의 ‘새판 짜기’
  10. 10[뭐라노] 아직도 '그들만의 체전'?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기고 [전체보기]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어떤 ‘최장수’ 기록
프랑스를 망친 결정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회 동행명령 외면한 지광스님, 법적 책임 물어야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한국 경제 떠받치는 중장년, 이제 다시 봐야
AI 시대, 평가의 진정성을 묻다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