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인문 정신은 언제나 곡선으로 간다

현실정치엔 전의만 가득, 사회 전반 양극화도 극심

완충장치 ‘존중·배려’ 없어…시인의 포용력·여유 필요

김종회 문학평론가·이병주기념사업회 공동대표

  • 김종회 문학평론가·이병주기념사업회 공동대표
  •  |   입력 : 2024-06-12 19:43:53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알제리 태생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여름’이란 산문에서 “겨울 한복판에서 결국 나의 가슴 속에 불굴의 여름이 있음을 안다”고 썼다. 이 반역적 상상력과 그 분위기를 닮은 시 한 편을 떠올려 본다.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익히 알려진 성삼문(1418~1456)의 옥중시조다. 세조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목숨을 던져 절조를 지켰다. 유학의 정명주의를 정신으로 확립하고 또 육신으로 체현한 하나의 전범, 그러기에 이 시조에는 ‘투사 성삼문’의 면모가 약여하다.

그런데 다음의 오언절귀 시 한 수를 더 읽어 보자. “격고최인명(擊鼓催人命)/ 서풍일욕사(西風日欲斜)/ 황천무객점(黃泉無客店)/ 금야숙수가(今夜宿誰家).” 한글로 풀어쓰면 이렇다. “북소리 내 목숨을 재촉하는데/ 서녘 바람에 지는 해가 기울어가네/ 황천으로 가는 길에 주막 하나 없다는데/ 오늘 밤은 어디서 잠을 이룰고.” 성삼문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던 순간에 남긴 절명사(絶命詞), 곧 임사부절명시(臨死賦絶命詩)라 알려진 한시의 명편이다. 이 이름 있는 시문 가운데 앞서 시조에서 보았던 ‘투사 성삼문’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는 어느 결에 사라지고, 숨이 막히도록 처연하고 감회가 넘치는 시의 문면에 ‘시인 성삼문’만 남아 있다.

시인 성삼문이 있고서야 투사 성삼문이 가능하리라는 인문적 사고와 정신주의의 개가! 우주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탈속의 수준에 도달했다면, 실제적 삶의 태도와 행위는 오히려 명료하고 유연할 것이다. 모든 기능과 방법은 사고와 인식의 결과다. 시인 성삼문의 유학적 세계관이 어느 순간 급작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것이 갖는 자기 체계의 지속성 아래 투사 성삼문은 그 부분집합에 해당한다. 이때의 시인은 투사이기 쉬우나, 투사가 시인이기는 어렵다. 참으로 감당하기 벅찬 상대는,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단기 목표에 시선을 두지 않고 성삼문이 가졌던 그 확신에 명운을 거는 사람이다. 시인으로서의 수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투사가 되는 일은 바늘 가는 데 실 가기다.

우리가 함께 형성하고 있는 공동체의 미래에 푸른 등불을 내거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고색창연하지만 여전히 효용성이 큰, 투사와 시인을 함께 바라보는 중용의 미덕을 오늘의 삶에 적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상호배타적이면서도 동시에 보족적인 개념을 대입하여, 비판적으로 보아야 할 현실의 면모는 너무도 많다. 한국 현실 정치는 가파르게 ‘투사’의 길로 치닫고 있다. 그 길에 선 이들의 눈에는 전의만 가득하다. 여야 상호 간의 관계는 고사하고, 각 정당 내부의 국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바라보며 소통과 조정이 작동해야 할 자리에, 이를 가능하게 할 ‘시인’의 국량이 없는 것이다. 참으로 해묵은 우리 정치의 숙제다.

한국 경제는 오래전에,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외면했다. 극심한 빈부 격차와 소득의 불균형 현상이 저소득층의 몰락과 중류계급의 파산을 선고했다. 중산층의 경제 활동이 살아 있고 그 층이 두터워야 건강한 사회 구조를 형성한다. 우리 경제가 성장 동력보다 더 공들여 보살펴야 할 지점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 곳곳에 이와 같은 양극화 현상이 편만해 있다. 그 완충장치로서의 존중과 배려가 ‘투사’에게는 없다. 그러기에 인문적 상상력과 정신주의의 포용력을 수반한 ‘시인’을 되살리는데 인식의 초점을 같이해야 할 때다. 그러고 보면 600년 전 시인의 시 한 편을 주의 깊게 읽는 일이 한나절의 소일거리가 아닌 터이다.

아메리카 인디언 속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라.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 빨리 가려거든 직선으로 가라. 멀리 가려거든 곡선으로 가라.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 시인의 마음이 된다는 것은 함께 멀리 곡선으로 가는 길이요, 함께 서서 푸른 숲이 되는 방식을 찾는다는 뜻이다. 문명 세례를 받지 아니한 인디언들도 아는 단순하고 명료한 이치를, 문명하고 부유한 세계 사람들이 잘 모른다.

투사는 목표가 앞서 있어서 언제나 행동이 화급하다. 반면에 시인은 사유의 운용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 어쩌면 우리 삶의 상황과 거꾸로 가는 방향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궁극에 있어서는 시인의 여유가 투사의 화급을 감싸안고 넘어서게 되리라는 것이 인문주의의 요체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다. 문명비평가요 미래학자인 버크민스터 풀러는, 21세기 초에 인류 지식의 총량이 2배가 되는 주기가 13일인데 2030년이 되면 3일로 단축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속도감과 효율성의 시대다. 이러한 때일수록 더욱 곡선으로 가는 시인의 마음, 그 미덕을 익히려는 노력이 우리 공동체의 삶에 있어야 할 것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2. 2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3. 3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4. 4“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5. 5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6. 6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7. 7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8. 8[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9. 9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10. 10[사설]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1. 1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2. 2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3. 3민주 “조희대 국정조사 실시”…국힘 “탄핵보다 더 비열”
  4. 4국힘 “공소취소 특검 전에 3+1 조작 특검 국조부터”
  5. 5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6. 6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7. 7"농지조사 송 장관이 제안" 이 대통령에 野 "불리해지니 장관 탓"
  8. 8김정호 "국제신문 100억 체불 지광, 동행명령장 거부시 고발조치"
  9. 9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10. 10김지용 중수청장, 또다시 국무회의 참석
  1. 1“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2. 2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 무상 교체 방침(종합)
  3. 3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최병호
  4. 4내년 상반기 재가동…한빛 등 7기도 연장 속도(종합)
  5. 5강연 통역하고 요금 모니터링…관광·마이스산업 AI 바람
  6. 6부산시 벤처펀드 받은 유망기업 ‘쑥쑥’…IPO 도전
  7. 7“임기내 부산 1호 유니콘기업, 기업공개 2건 목표”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27일
  9. 9복권판매점 늘어난다…정부, 우선계약 대상에 14만명 추가
  10. 10농식품부, ‘한우의 날’ 맞아 최대 63% 할인 행사 진행
  1. 1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2. 2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3. 3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4. 4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5. 5[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6. 6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7. 7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8. 8“국제신문 회생 더이상 미룰 수 없어”…전재수 시장, 지광에 공식서한 보내
  9. 9법원 “부하직원 횡령, 감독 안 한 상급자 견책 정당”
  10. 10“국제신문 지켜야” 시민단체 대표·원로 29일 법원 앞 선다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3. 3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4. 4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5. 5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6. 6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7. 7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8. 8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9. 9[뭐라노] 데이터 기반 똑똑한 야구·수비강화…롯데의 ‘새판 짜기’
  10. 10[뭐라노] 아직도 '그들만의 체전'?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기고 [전체보기]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어떤 ‘최장수’ 기록
프랑스를 망친 결정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회 동행명령 외면한 지광스님, 법적 책임 물어야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한국 경제 떠받치는 중장년, 이제 다시 봐야
AI 시대, 평가의 진정성을 묻다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