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다시 아날로그의 세계를 생각한다

조원희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운영위원장

  • 조원희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비프 운영위원장
  •  |   입력 : 2024-06-23 19:50:25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부산 광안리에 아마도 전국 최고였던 LP바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수영구 민락동에 위치했던 그 곳은 LP의 수량은 둘째치고 세계의 희귀 음반이 가득했으며 오디오 시스템 역시 높은 수준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곡의 능력이었다. 재즈와 클래식을 기반으로 록 음악에서 팝이나 가요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았다. 여느 LP바에서 들을 수 없는 음악들이 흘러나왔고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뻔한’ 선곡은 좀처럼 하지 않는 곳이었다. 아쉽게도 팬데믹의 흉포에 밀려 폐업하고 얼마 전 다른 도시에서 영업을 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곳은 필자처럼 ‘나이 든’ 고객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에 좋은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곳으로 이름나 젊은 손님도 많이 찾았다. 그들의 생애주기 안에 LP가 유효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LP바를 통해 레코드가 플레이되는 과정과 메커니즘을 체험할 수 있었다.

디지털 음원도 아니고 CD의 시대가 시작되자마자 LP는 영구히 그 생명을 잃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아니었다. 커다랗고 무거운 데다 관리마저 까다롭고 이제 가격도 비싸진 이 매체는 21세기의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얼마 전 밴드 ‘모임 별’은 ‘우리 개’라는 제목의 신보를 발표했다. 이 음반은 근래의 방식인 디지털 음원 릴리스는 물론 LP로도 나왔다. 최근 신보를 내는 기존 음악인은 물론 신인까지도 LP를 발매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디지털의 시대, 물리적 움직임을 통해 음악을 재생하는 매체가 지니는 가치는 여러 가지다. 하나만 꼽자면 특히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쉽게 넘길 수 없다’는 점이다. CD로부터 현재의 디지털 음원까지, ‘다음 곡’으로의 전환이 간단한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된다. 하지만 LP는 다르다. 극히 희귀한 리니어 트래킹 방식의 턴테이블을 제외하면 레코드의 소리골을 찾아 손으로 직접 카트리지를 옮기는 노력을 해야만 다음 곡을 들을 수 있다. 이 귀찮은 방해 덕분에 놀랍게도 음반 전체에 집중하게 된다. LP의 시대에는 앨범 전체가 하나의 메시지를 품고 있는 ‘콘셉트 앨범’이 많았다. 물론 단일 싱글로도 위대한 음악적 성취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풀 렝스’의 한 음반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더욱 숭고한 일이다. CD의 시대가 되면서, 쉽게 다음 곡으로의 전환이 가능해지면서 음악인들의 창작 방식이 조금은 가볍게 바뀐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새 음반을 LP로 발매하는 아티스트들은 ‘모임 별’처럼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의 시대에 아날로그가 더 높은 위상을 가지는 것은 음악에서만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영화에서도 본다. 2009년을 기점으로 한국에서 필름으로 영화를 만드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필름의 물성적 한계를 뛰어넘은 디지털 기술은 실제로 영화라는 예술을 크게 발전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 상영 단계가 아니라 촬영 과정에서 필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영화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예술적 특성을 공고하게 만든다. 매년 4월 미국에서 열리는 전자 미디어 발표회 ‘NAB SHOW’에서 올해는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됐다. ‘오펜하이머’가 작품상을 받은 제 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작품 중 약 44퍼센트 정도가 필름으로 촬영됐다는 것이다. 언제나 필름을 고수해 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당연하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한국계 신인 감독 셀린 송의 ‘패스트 라이브즈’ 역시 필름으로 촬영된 영화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시간과 공간만 주어진다면 재 촬영의 기회가 이론적으로는 무한한 디지털 매체와 달리 필름의 유한성은 현장에서 창작자와 배우를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또한 필름이 지닌 고유의 화질은 어떠한 디지털 후반 작업으로도 정확히 재현하기 힘들다. 최근 우리가 열광했던 작품 중 필름으로 촬영된 것으로 스필버그의 ‘파벨만스’ 스코세이지의 ‘플라워 킬링 문’ 웨스 앤더슨의 ‘프렌치 디스패치’ 등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은 물론 조던 필의 ‘노프’나 존 크래신스키의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같은 공포영화들도 있다. 디지털 시대, 창작 과정에서 다시 아날로그를 채택한 이들이 각광받고 있는 현상은 매우 흥미롭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시, ‘부산항선’ 이달 예타 신청…원도심~북항 잇는 24.21㎞ 트램
  2. 2“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69건
  3. 3부산 동래·금정구 하늘에 뜬 ‘쌍무지개’…희망과 행운의 메시지
  4. 4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5. 5[단독]서지영 “기보, 본사는 부산에 두고 부산 기업은 심각한 홀대"
  6. 6[속보]돌아온 ‘부캉이’, 식지 않는 인기…누적 방문객 80만 넘어
  7. 7금융권 광범위 AI 공격 “해킹 시도 더 많을 수도”
  8. 82026 진주남강유등축제 화려한 개막…18일까지 ‘빛의 향연’
  9. 9“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10. 10"친구가 총기 들고 탈영"…허위 신고한 20대 벌금 500만 원
  1. 1[단독]서지영 “기보, 본사는 부산에 두고 부산 기업은 심각한 홀대"
  2. 2'좌아하게'? 다시 논란 부른 이 대통령 SNS 정치
  3. 3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4. 4[속보]민주당, 국힘 집회에 “극우 유튜버들 박수 세례에 중독된 장동혁”
  5. 5與 “조희대, 국감 출석 불응 의사…불출석은 국회법 위반”
  6. 6李대통령, 금융기관 개인정보 유출에 “철저 조사 지시”
  7. 7'광대극' 조소 이어 미사일로 응답한 北. 좁아진 청와대 입지
  8. 8영화 '암살자(들)' 논란 속 장동혁, 고(故) 육영수 생가 방문
  9. 9국힘, 싱가포르영화제 ‘암살자(들)’ 상영 철회 서한…與 “영틀막”
  10. 10김민석 “차기 총선 주 싸움터는 한강 아니라 낙동강”
  1. 1“이래서 당첨 힘들었나”… 최근 5년간 민간아파트 부정 청약 1669건
  2. 2[속보]돌아온 ‘부캉이’, 식지 않는 인기…누적 방문객 80만 넘어
  3. 3금융권 광범위 AI 공격 “해킹 시도 더 많을 수도”
  4. 4"산업용 차등요금제, 기업의 지역이전 효과 극히 불투명"
  5. 5"차명계좌 적발, 작년 이후 총 3471건…NH농협 가장 많아"
  6. 6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둘러싼 한·미 불협화음 언제까지 이어지나
  7. 7정부의 농축산물 할인 지원 예산 급증… 재정 부담 가중될 듯
  8. 8카카오 월4900원 멤버십 출시…네이버 쿠팡과 3파전
  9. 9이억원 “AI 해킹 가능성…금융권 최고수준 경각심 가져야”
  10. 10미래대응기금, 국감 쟁점 부상…국회 "재원 지속가능 의문"
  1. 1부산시, ‘부산항선’ 이달 예타 신청…원도심~북항 잇는 24.21㎞ 트램
  2. 2부산시, ‘부산항선’ 이달 예타 신청…원도심~북항 잇는 24.21㎞ 트램
  3. 3부산 동래·금정구 하늘에 뜬 ‘쌍무지개’…희망과 행운의 메시지
  4. 4HD현대중공업 올해 임단협 잠정합의안 부결노사 갈등 커질 듯
  5. 52026 진주남강유등축제 화려한 개막…18일까지 ‘빛의 향연’
  6. 6"친구가 총기 들고 탈영"…허위 신고한 20대 벌금 500만 원
  7. 7[속보] “법 위반한 적 없어” 김상욱 울산시장 첫 경찰 출석
  8. 8AI 성착취물 텔레그램방 ‘그놈’…잡고 보니 경찰관
  9. 9“술값 내라” 여러 차례 여자친구 때릴 듯 위협한 20대 집유
  10. 10울산바위 배경으로 사진 찍다 추락한 70대 등산객 숨져
  1. 1“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2. 2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3. 3‘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4. 4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5. 5[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6. 6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7. 7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8. 8서채현, 아시안게임 스포츠클라이밍 여자 리드 금메달
  9. 9한국, AG 남자 축구 4회 연속 금메달…결승 한일전 1-0 승리
  10. 10송교창·최준용 빠진 KCC…‘루이스 킹’ 희망될까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국제칼럼 [전체보기]
배지의 실력행사
개헌 말하려면 헌법 준수부터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상표권 알박기
민원인(들)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가덕도신공항 공사비, 법 개정 앞서 정부가 힘 실어야
AI 해킹에 노출된 금융권 보안체계 재점검 시급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드골 대통령과 군복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