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김능환 전 대법관은 33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바로 그 다음 날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새 삶을 시작했다. 그는 공직 생활을 하며 한결같이 검소한 모습을 보인 현대판 ‘청백리’였다. 언론은 전관예우에 의지해 돈과 명예를 좇지 않는 파격적인 행보라며 칭찬했다. 하지만 그해 9월 그도 결국 대형 로펌으로 갔다. 던진 화두는 ‘무항산 무항심(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 생활고에 따른 선택이란 의미다. 개인의 판단이라하겠으나 전관들과 다른 삶을 기대한 많은 이의 아쉬움이 컸다.
조선시대에는 부정부패와 권력형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관료에게 청백리상을 줬다. 수상자 수는 210여 명에 불과하다. 사실 조선시대 청백리가 워낙 귀해서 공직자들의 ‘청렴’을 정책적으로 유도했던 고육지책이었다. 조선 후기엔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면서 청백리 선출 제도가 사라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으려 1993년 이들의 재산 공개를 의무화했다. 이는 공직자의 명예혁명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투명한 공직사회 조성 및 부패근절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장관 대법관 헌법재판관 등 일부 후보들의 기상천외한 재테크 방법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밝혀지면서 논란이 됐다. 특히 법을 잘 아는 법관들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는 과정을 보면 허탈하다. 합법적이지만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 딸의 남다른 재테크가 입길에 올랐다. 이 후보자가 신고한 재산은 본인 46억 원, 동행복권 운영사 대표인 남편 117억 원가량이다. 무직인 26세 장녀는 서울 용산구 재개발구역에 다세대 주택을 가지고 있다. 딸은 2년 전 학생 신분으로 별다른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전세를 끼고 7억7000만 원에 이 집을 샀다. 전세보증금을 뺀 5억1000만 원 중 3억800만 원은 아버지에게서 증여받고, 나머지는 아버지에게서 빌렸다. ‘아빠찬스’로 재개발 호재를 노린 갭투자를 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딸은 화장품 연구개발 기업의 비상장 주식을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돈으로 2017년 매입했다. 지난해 5월 이 주식 절반을 아버지에게 되팔아 원금의 63배의 차익(3억8000만 원)을 거뒀다. 이 후보자는 “법을 준수했고 세금도 성실히 납부했다”고 했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하더라도 우리 사회 지도층에 너무 만연한 ‘아빠찬스’를 보면서 대다수 청년이 얼마나 많은 박탈감을 느낄지 걱정스럽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