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결혼 후 매년 추석이면 시댁 큰아버님 댁에 갔다. 추석 당일 가기 때문에 항상 새벽에 움직였다. 도착하면 오전 6시 30분에서 7시 정도라 항상 추워서 따뜻한 겉옷을 챙겨가곤 했다. 올해 추석은 경남 사천 큰아버님 댁에 가지 않고 오전에 일찍 부산 시댁에만 들렀다. 오전 8시였지만 차가운 공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시댁에선 생선을 굽고 음식을 데우느라 환기가 되라고 창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에 에어컨은 틀지 않았다. 아침을 먹기 시작한 지 한 10분쯤 됐을까 아들 녀석의 관자놀이로 땀이 주르륵한다. “할머니, 에어컨 틀어주시면 안 돼요? 너무 더워요”. 그제야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자 평온한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같은 날 오전 9시 59분 “폭염 및 열대야 지속 중, 장기간 야외 활동 자제, 충분한 수분 섭취 및 그늘지고 시원한 곳에서 정기적인 휴식, 양산 쓰기 등 건강관리 바랍니다”며 부산시에서 안전안내문자가 왔다. 이어 오후 2시에는 행정안전부의 폭염경보, 오후 2시 13분에는 부산 모든 지역 폭염경보 발효 문자도 왔다. 폭염경보는 최고 체감온도 35도 넘는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되거나 더위로 큰 피해가 예상될 때 내린다.
부산의 폭염특보는 추석 당일인 17일 12일째였다. 이날 오후 3시 10분을 기준으로 부산 북구가 36.1도로 제일 더웠고 강서구 35도, 해운대구와 부산진구가 34.8도였다. TV 뉴스에선 추석 당일 전국 곳곳에서 9월 폭염 신기록을 경신했다는 얘기가 연신 나왔다. 전남 곡성은 38도로 사람 체온보다 높았고 대구는 36.1도로 117년 만에 최고 기온이었단다. 다행히 다음 주 초반에는 기온이 떨어져 선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 조금은 기대가 생겼다.
5월부터 이르게 시작된 여름은 아직도 끝날 생각이 없는 듯하다. 기상청에선 1년을 3개월씩 4계절로 나누는 것에 대한 논의를 새롭게 한다는 얘기도 있다. 누구는 농담처럼 안 그래도 부산은 가을이 짧은데 이러다간 계절이 여름과 겨울밖에 남질 않아서 아이들에게 가을이 무엇인지 설명해 줘야 하는 날이 오는 건 아니냐는 말도 한다.
국지성 집중호우나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기후가 많이 발생하면 기사나 책 속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걱정이 현실로 다가온다. 정말 지구가 너무 많이 아파서 견디기 힘들어서 보이는 이상 현상일까. 지구온난화는 사실 너무 심각하고 전지구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일인데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러려니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지만 경제나 정치 등에 항상 환경은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지구와 자연환경은 모두 미래세대에서 빌려 쓰는 것이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자꾸만 그 소중함을 잊게 된다. 이러다간 SF영화 속 황폐화된 지구를 떠나야 하는 일이 실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극심한 환경오염으로 지구에선 살아갈 수 없어 화성으로 떠나거나, 돔을 씌운 곳에서만 살 게 된다든가 하는 일이 현실이 되는 거다. 공상이나 영화, 소설 속에선 재미있을 수 있겠지만 그게 현실이라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야기 속에선 경제적·사회적 지위나 공헌도에 따라 지구를 떠날 수 있고 소위 가진 것 없는 이들은 쓰레기 별이 된 지구에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입으로 환경보호를 외치고 정말 전 인류가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한다고 글을 쓰는 지금도 집의 에어컨은 작동 중이다. 쾌적하고 차가우며 습기 없이 가슬가슬한 공기 속에서 써내려가는 이상기후와 지구온난화에 대한 걱정이라니. 참으로 가볍고 진정성 없는 이야기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가 지금 한 번은 생각해 볼 일이다. 바닷물의 수온이 상승해 생태계가 바뀌고 기후난민이 발생하는 일은 피부로 다가오지 않지만 이렇게 힘들게 계속 더위가 이어진다면 내 생활의 불편함이 바로 다가오고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야 할 날이 올 수 밖에 없다.
최영지 독자여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