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경남 일대에 기록적인 ‘9월 폭우’가 쏟아졌다. 부산의 강수량은 지난 20일 밤부터 21일까지 중구 대청동 기준으로 403.4㎜, 21일 하루에만 무려 378.5㎜에 달했다. 비가 아니라 폭포수 같았다. 이틀간 가덕도에는 426㎜, 부산진구는 424㎜, 사하구는 422.5㎜, 금정구는 421㎜가 내렸다. 경남은 더 했다. 창원에는 200년 빈도에 해당하는 529.4㎜가 쏟아졌고, 김해(431.1㎜) 고성(417㎜) 양산(382.6㎜) 등도 하루 최고, 9월 최고, 시간당 최고 강수 기록을 모두 갈아 치웠다. 김해에선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대성동고분군 일부가 무너졌다. 이례적인 가을 폭염에 이은 가을 폭우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상이변 때문에 취약지대 거주 주민들의 불안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

부산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지난 21일 사상구 학장동의 한 도로에 가로 10m, 세로 5m, 깊이 8m 가량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현장 관계자가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이번 폭우가 비의 양에 비해 초량지하차도 참사 같은 인명 사고나 재산 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점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침수 이력이 있거나 우려 지적을 받은 곳에서의 사고 재발은 엄중히 따져야 한다. 대표적인 게 사상구 학장동 싱크홀이다. 도시철도 2호선 사상~하단선 공사장 인근에 가로 10ｍ 세로 5ｍ 깊이 8ｍ 크기로 땅이 꺼져 트럭이 두 대나 빠졌다. 감전동과 학장동 일대에서 올 들어서만 6번째 싱크홀이다. 큰 비만 왔다 하면 하천이 넘는 동천 주변 주민은 이번에도 대피하는 불편을 겪었다. 연제구 거제동, 수영구 수영로터리, 해운대구 올림픽교차로, 부산진구 범천동 등 침수지는 매번 비슷하다.

부산에는 상습 침수와 재해 우려지역이 거의 정해져 있다. 부산시는 관련 정보를 종합한 ‘도시 침수 통합정보시스템’을 만들어 실시간에 가깝게 위험지구를 알려주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위험 사실 고지로 행정 임무가 끝나는 건 아니다. 해당 지역 주민의 재산권을 지키려면 근본적인 방지책이 나와야 한다. 부산시는 문제점이 반복적으로 드러난 지역을 중심으로 빗물저류조 배수펌프장 하수관로 등을 확충 또는 신설을 추진하고 있으나 계획 준공 시점은 대부분 내년 이후로, 속도가 너무 느리다. 동천 역시 정비가 빨라도 내년이고 더 늦어질 수도 있다. 그 안에 큰 비가 오면 또다시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한다는 의미다.

앞으로 100년, 200년 빈도 폭우는 상시적으로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 현재의 배수시설이나 저류조 용량은 과거 30년 빈도에 대부분 맞춰져 있어 기습 혹은 극한 폭우를 감당하지 못한다. 더 큰 하수관로를 심고 거대 용량의 저류조를 건설하는 작업이 단기간에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경각심을 갖고 집중 투자해 개선 속도를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천 정비 등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방재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분야부터 서두를 필요가 있다. 가을 태풍이 여럿 예보되어 있다. 주민들도 주변 하수구나 빗물받이 청소와 관리를 통해 기존 시설의 효용성을 극대화하는데 협조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