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어제 “북한군 1진 최소 3000명이 러시아 동부로 이동해 훈련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로 이동한 북한 병력이 3000명에 달한다. 연말까지 1만 여명에 이를 수 있다”는 국가정보원 발표를 뒷받침한 것이다. 커비 보좌관은 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북한을 겨냥한 “중대한 제재 단행”을 예고했다. 북한의 불장난은 끝이 없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우라늄 농축시설과 전략미사일기지를 찾아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과시했다. 모두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무모한 도발이다.

러시아 독립 언론기관 ‘아스트라’는 최근 텔레그램 채널에 북한군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건물 외부에 서 있는 모습을 촬영해 게시했다. ASTRA 텔레그램 채널 캡처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군사협력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이다. 북한은 파병 대가로 식량·연료뿐만 아니라 핵·탄도미사일·방공시스템 같은 군사기술을 러시아에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안보 위협은 그만큼 커졌다. 어느 한 쪽이 전쟁에 나서면 상대에게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는 북러조약이 행동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군사적 개입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 파병에 맞서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제공을 검토 중인데, 쉽지 않은 선택이다. 러시아는 이미 ‘비핵보유국이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하면 공동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레드라인을 명확히 했다. 우리가 무기를 제공하고 러시아가 반발하면 핵 확전 위험이 커지는 ‘결정적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남북 갈등을 끌어올렸다. 올해 4월 비무장지대 북쪽에 방벽을 설치하더니 지난 15일에는 동해선과 경의선을 폭파해 대화 의사가 없음을 공식화했다. 북한을 압박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점은 고민스럽다. 대북 제재 위반을 감시할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은 러시아 반대로 이미 해체됐다. 국제사회의 분열도 우리에겐 불리하다. 최근 러시아는 중국 인도 이란 이집트와 튀르키예까지 초청해 브릭스(BRCIS)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서방에 맞서 힘을 과시한 것이다. 강대국들이 각개전투에 나서면 제멋대로 날뛰는 북한을 견제하기 어렵다.

긴장이 높아지면 우발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 한반도 긴장수위를 낮추는 가장 현명한 길은 외교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물밑 협상이 우선이다.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넣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유사시를 대비해 우방국과의 정보 공유는 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지난 16일 한미일을 포함해 11개국이 구성한 ‘다국적 (대북) 제재 모니터링팀(MSMT)’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연대 지점도 넓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 변화다. 젊은 군인들이 이국땅에서 ‘총알받이’가 되지 않도록 파병을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 앞으로 비극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모두 북한과 러시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