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에 있는 한 독서모임에 참석했다.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하는 모임이었는데, 회사에서 퇴근하고 오는 직장인을 배려한 듯 보였다. 모임은 책에 관한 간략한 감상평, 가장 인상적인 구절, 책과 관련한 자신의 경험 혹은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모임은 무려 3시간이나 이어졌다. 모임 공간에서 나오니 쌀쌀한 가을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이마에 살짝 땀이 맺혀 있었음을, 그만큼 모임의 열기가 뜨거웠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모임이 끝나고 도시철도를 타니 어느새 밤 11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도시철도 안에선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일제히 휴대폰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소 책을 좋아하더라도 지친 하루의 끝에서 책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 시각이긴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책에 관한 이야기로 3시간 넘게 떠들다가 모두가 휴대폰으로 대동단결한 세계와 마주하니, 잠시 뜬구름에 있다가 내려온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50대로 보이는 남성 한 분이 타더니, 이내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문득 늦은 시각 도시철도에서 책을 읽는 그 이유와 사연이 궁금해졌다.
출판 혹은 독서를 주제로 한 여러 글에서 자주 인용하는 통계 자료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년마다 진행하는 국민 독서 실태조사가 바로 그것인데, 주로 성인의 독서율이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제시된다. 이는 중요한 지표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며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데이터이기도 하다. 통계 자료는 주로 독서율을 ‘다시’ 높여야 한다는 논의를 위해 활용되는데, 여기에는 의도치 않았을지라도 독서율이 높았던 과거는 ‘정상’이고, 독서율이 낮은 현재는 ‘비정상’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이 과정에서 ‘현재’는 삭제되고 독서율이 더 낮아질 ‘미래’에 대한 불안만이 강조된다. 초점은 책을 읽지 않는 이들에게 맞춰지며, 어떻게 하면 비독서 인구를 독서 인구로 새롭게 유입할 수 있을지만이 최대 관심사가 된다.
과거와 비교할 때 미디어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했으며, 이러한 추세는 점점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통계에 따르면 국민 독서 실태조사가 처음 이루어진 1994년 성인 독서율은 무려 86.8%이다. 현시점에서 국가의 1년 치 총예산 모두를 독서 진흥을 위해 쏟아붓더라도 그 수치에 다시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바뀐 미디어 환경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즉 과거만큼 ‘회복’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으며, 지금의 시대에 맞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아무도 책을 읽지 않는 영상매체의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늦은 밤 도시철도에서 홀로 책을 펼치는 어느 중년의 남성이 있고, 퇴근 후 독서모임에 참여해 3시간 넘게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이 있다. 그 너머에는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이들이 있고, 인터넷 서점에서 클릭 몇 번이면 집 앞까지 책이 배송되는 시대에도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애써 출판사를 만들어 책을 펴내는 이들도 존재한다. 독서율이 점점 감소한다는 통계만으로는 결코 측정하기 어려운, 책을 향한 간절한 마음들이다.
또한 책 이외에는 딱히 즐길 만한 콘텐츠가 없던 시대에 책을 읽었던 독자를, 책보다 재미있는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에 책을 읽는 독자와 같은 시선에서 바라보긴 어렵다. 즉 과거에 읽은 책 한 권과 현재 읽는 책 한 권은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데이터는 이 둘을 동일한 한 권으로 측정한다. 이를 통계의 오류라고 볼 수는 없지만, 통계가 담지 못하는 변화임은 분명하다.
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느냐고 묻기 전에, 우리는 왜 아직도 늦은 밤 도시철도에서 책을 펼치는 사람이 있는지, 왜 아직도 퇴근 후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책을 모두 불태우며 독서를 법으로 금지하더라도 기어코 책을 펼칠 이들이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더 나아가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마땅한 환경을 제공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중요한 건 독서율의 ‘회복’이 아닌, 통계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과 변화를 포착하며 책 읽는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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