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약속이 있어 부산 사하구 하단동 동아대학교 인근을 방문했다. 젊은이들로 넘쳐나던 상가가 한산했다. 건물 유리에 ‘임대’ 딱지가 붙은 곳도 많았다. 부산 중구 남포동 대로변에도 빈 상가가 늘고 있다. 물가는 올랐으나 월급이 제자리걸음이다 보니 소비 여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시민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한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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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수 경기가 꽁꽁 얼어붙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과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90만7000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의류·신발 지출은 작년 동기보다 1.6% 감소한 11만4000원이었다. 연합뉴스 |
지난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3.0%로 0.25% 포인트 낮춘 것은 이런 이유다. 금리를 연달아 내린 것은 2009년 이후 15년 9개월 만이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그만큼 심각하다고 봤다는 이야기다. 한은은 한국경제 체질이 약해지면서 저성장이 고착화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한은은 이와 함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 전망치도 종전 2.1%에서 1.9%로 낮춰 잡았다.
이미 시장에서는 내년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내년 경제 성장률이 1%대로 내려앉을 가능성을 경고했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 씨티, 제이피모건 등도 내년 성장률은 2.2%에서 1.8%로 낮췄다. IMF 외환위기 이후 4~5%대를 유지해온 성장세가 1~2%로 둔화하면서 우리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진짜 문제는 잠재성장률이다. 잠재성장률이란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노동이나 자본 등 자원을 최대로 활용할 때 달성 가능한 성장률을 말한다. 한은이 이르면 이달 말 새로 추정한 잠재성장률을 발표할 예정인데 기존 2%에서 1%대로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경제 기초체력을 1%대로 본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기초체력이 약하다는 것은 한은이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로도 확인된다. 실질GDP에서 잠재GDP를 뺀 ‘GDP 갭(gap)률’이 2020~2025년 잇따라 마이너스였다. 이는 장기·구조적 경기침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우리를 둘러싼 대외환경도 만만찮다. 내년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우리 경제는 더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25일 ‘취임 첫날인 내년 1월 20일 멕시코·캐나다 제품에 25%, 중국산 제품에는 추가로 10%를 더한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가 관세 장벽을 높인다면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당장 멕시코에 25%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삼성전자 LG전자 등 미국 시장을 겨냥해 멕시코에 진출한 우리 기업 부담이 커진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중 관세 전쟁이 벌어질 경우 우리나라의 수출이 최대 448억 달러(한화 62조8812억 원)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도 존폐 위기에 몰렸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않길 바라기만 해선 안 된다. 트럼프 당선인과 마찰이 잦았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관세 인상’ 위협에 지난달 29일 급하게 미 플로리다주의 트럼프 당선인 저택을 찾아갔다. 아직 우리에게 위기가 닥치지 않았다고 넋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우리 정부는 단단히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트럼프 태풍과 함께 한국 경제의 트리플(생산·소비·투자)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안일한 태도를 보여 불안하다.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꽁꽁 얼어붙었는데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15일 산업활동동향 발표 이후에도 ‘완만한 경기 회복’이라는 큰 흐름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현장의 경고음이 커지자 2일 윤석열 대통령은 “전향적인 내수·소비 진작 대책을 강구하라”고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주문했다. 이런 때 정부가 지출을 확대하는 적극적 재정 정책을 펼칠 수 있는데 세금이 안 걷혀 쓸 돈이 부족하다. 올해 10월까지 국세 수입(239조6000억 원)은 지난해보다 11조7000억 원가량 줄었다. 11, 12월 지난해만큼만 세금이 걷히면 1년간 총 국세 수입은 332조5000억 원이 된다. 이것도 정부가 애초 짠 예산보다 34조8000억 원 부족하다.
경제당국은 이제라도 정책 기조와 전략을 재정립해 경제활성화에 주력하라. 총체적 난국에 빠진 우리 경제를 살리려면 여야 정치권도 싸움을 멈추고 힘을 모아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자영업자·취약계층 지원을 확대하면서 꽁꽁 언 내수 심리 회복에 힘쓰길 바란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는 경제활력 저하의 주요 원인이다. 장기적인 탈출구는 구조개혁이다. 민간의 혁신과 기업 투자를 유도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