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중국 작가 주자청(1898~1948)의 ‘뒷모습’이라는 수필에 나오는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고향에서 북경으로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며, 귤을 사주기 위해 11월 모양의 철로를 건너 온몸을 비비적거리며 홈으로 기어오르는 뒷모습이다.

뒷모습은 왠지 쓸쓸하다. 나는 세월의 뒷모습인 송년을 생각하며 쓸쓸함을 달랜다. 날씨는 춥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을 친다. 차가운 들숨과 따뜻한 날숨의 호흡으로 마음을 챙긴다. 언 손을 녹이는 하얀 입김은 일어나는 감정이다. 감정은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자식은 추위에 직장생활을 잘하는지, 일가친척은 가내 두루 평안한지 궁금하다.

여러 가지 일로 많은 느낌이 교차하는 시점이다.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해가 오는 기대로 희망을 품는다. 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아쉬움을 좋아한다. 살면서 지나친 희망에서 오는 실망 때문은 아닐까. 모자라서 안타깝고 만족스럽지 못할 때를 만족한다. 그러면 파란 하늘의 새로운 빛이 보인다.

태양빛은 여가수 목소리처럼 가냘프게 눈부시다. 주위의 공기는 투명해 그림자가 선명하다. 가녀린 햇살과 나목과 찬바람과 쓸쓸한 거리의 건물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잎을 떨어뜨린 나목은 추워 보이기도 하고 홀가분해 보이기도 한다. 나무도 가벼운 몸으로 자신을 지키며 만족할 줄 안다. 찬바람은 갈 길을 잃어버린 겨울 낙엽을 날린다. 건물은 냉기를 동반하고 하천은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으로 언다.

바야흐로 겨울에 들었음을 안다. 드넓은 낙동강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멀리 강물 위에 겨울 철새가 헤엄치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순간 철새는 떼를 지어 날아오른다. 저녁놀 위로 철새가 날아오를 때의 아름다움은 글로 표현이 어렵다. 가만히 소실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해가 넘어가자 바람이 세차게 불고 갈대의 흔들림이 들리지 않는 소리로 들린다. 추억 속 겨울풍경의 아름다움은 내가 누리는 특권이다.

새소리가 뜸해지고 밤이 깊으면 군것질거리가 생각난다. 대설에 눈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눈이 온다는 소식도 나쁘지는 않겠다. 동지는 밤이 길어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다. 날씨가 추울수록 호랑이 새끼가 많이 태어난다고 전한다. 날씨가 땡고추처럼 맵고 추워 우리네 아이들도 많이 태어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살아내기 위하여 말 많았던 지난날을 잊고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잘하고 있는 일마저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추스른다. 꼭두새벽 서녘에 달이 질 때는 마지막이 아니라고 우겨본다. 감성적 생각으로 끝은 처음과 같다고 고집도 부려보는 것이다. 가슴에 소주를 적시고 나목처럼 바람소리로 울어도 좋으리라.

아버지의 제사가 들어있다.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전야에 돌아가셨다. 상여를 앞세워 산으로 가는데 날씨가 몹시 추워 뺨은 감각이 없었다. 관 뚜껑을 열고 차가운 흙을 삽으로 퍼 넣을 때도 아버지는 가만히 누워만 계셨다. 아버지의 모습은 산머리 매서운 한풍에도 온화했다. 야윈 얼굴에 눈은 살며시 감았고 입안엔 눈 같은 하얀 솜을 물고 있었다. 찬바람은 칼로 살을 도려내듯 몰아쳤고 추위는 우리 가족의 울음소리마저 얼려버렸다.

지난달엔 묘사가 있어 부모님 무덤에 다녀왔다. 무덤 주변엔 구절초가 굽이굽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평소 꽃을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언제 구절초를 가꾸셨는지 내 마음을 기쁘게 해주었다. 서리가 내리면 구절초는 서리 맞아 맨땅에서 시든다. 나는 구절초가 씨앗을 퍼뜨리고 시드는 것을 지나쳤다. 새로운 구절초로 피어날 희망을 퍼뜨리고 시든 것을 지금까지 간과해버렸다.

12월은 내 가슴 속에 그림처럼 간직한 아버지의 앞모습이다. 아버지가 무덤에 들 때 나를 걱정하며 “나 이젠 간다. 건강 잘 챙기고, 시간 나면 한 번씩 찾아오너라”하는 말을 염화미소로 보여 주셨다. 나는 아버지의 씨앗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가신 아버지, 수의를 입고 꽁꽁 언 땅에 묻히는 말끔한 아버지의 앞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