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마칠 즈음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아시아인 중 다섯 번째이자,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최초였다. 2016년에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이후 국내에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되긴 했으나 실제로 수상까지 이어지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이를 방증하듯 노벨 재단의 결정에 외신은 ‘깜짝쇼’라고 부를 만큼 이례적인 결과로 여겼다. 그러나 이와는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경이로운 기쁨을 느꼈다. 평소에 독서를 즐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책을 손에 잘 쥐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한마음으로 환호했다. 독자들은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을 번역서가 아닌 원서로 읽을 기회를 맞게 되었다.

낭보의 파급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도서 구매 사이트는 한강 작가의 도서들을 구매하기 위한 사람들의 주문 폭주로 유례없는 마비를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한강 작가의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주요 서점에서 올해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이는 지난 10년간 종합 1위를 한 도서들과 비교했을 때도 가장 많은 판매량이었다. 동시에 수면 아래 잠들어 있던 수많은 독서인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으며, 문인을 꿈꾸는 예비 작가들에게도 희망을 건넸다. 이러한 움직임에 도서관과 문학계는 빠르게 호응했다. 한강 작가와 관련된 수많은 행사가 기획되었다. 수상 후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몇몇 기관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강연 요청이 내게 들어왔다. 그중 시민도서관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을 수락하며, 몇 년 만에 ‘소년이 온다’를 다시 손에 쥐게 되었다.

초독 당시에도 좋은 작품임이 분명했다. 역사 속 아픈 상처를 강렬하면서도 덤덤하게 표현한 부분이 감명 깊었다. 특히 2인칭으로 불리는 시점의 향연은 다른 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색다른 매력이었다.

그런데 재독하며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진중한 울림을 받았다. 그러한 데는 그간 좋은 작품들을 읽으며 글을 보는 안목이 달라진 것도, 조력자로서 참가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숙독한 노력이 더해진 결과였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담백하면서도 수려한 문체와 그에 따라 변주하는 감정선이 선연하게 다가왔다. 그제야 내 주변의 독서가들이 왜 입을 모아 한강 작가를 찬탄하는지, 노벨문학상의 무게가 얼만큼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한강 작가는 여러 인터뷰에서 집필 과정에서 느꼈던 진솔함을 털어놓는다. A4 한 페이지를 완성하지 못한 채 눈물로 밤을 지새운 날들, 오래전 ‘그날’의 참혹함 속에서 태극기로 덮인 이름조차 모르는 누군가를 위로하고자 했던 간절함,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결연함을 드러내고자 고군분투했던 시간에 대하여. 그리고 말한다. 소년은 저 멀리 떠나는 게 아니라 우리를 향해 오는 것이라고, 수십 년이 지났어도 절망스러웠던 그곳의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고요한 외침은 입술 밖을 넘지 못하고 혀끝에 머물지만, 텍스트 속 행간 사이로 한없이 소리치고 있다. 어떠한 이유건, 그날의 아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가슴 깊이 소망하는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사람들이 고된 일상을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할 즈음 생방송 너머로 ‘비상계엄’이란 비보가 전해졌다. 1980년 5월 17일 이후 44년 만의 일이었다. 책과 영화 속에서만 마주할 거라 여겼던 네 글자를 네모난 세상 속에서 목도하던 찰나의 순간을 기억한다. 끌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른 채 기사를 새로고침 하던 중에 문득 전남도청 내부에서 벽에 기대어 잠시 눈을 붙이던 작품 속의 그들이 떠올랐다. 그 긴박한 상황에 그들은 왜 잠이 들었을까, 그들은 꿈을 꾸었을까, 꾸었다면 어떤 장면이었을까, 작품 속 주인공인 동호는 꿈속에서나마 귀천하지 못하는 친구 정대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까.

다행히 비보는 약 6시간 만에 해제되었다. 애석하게도 지금의 순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앞으로 어떤 일을 맞닥뜨릴지 알 수 없을 듯하다. 한 가지 바라는 건, 또 다른 소년이 오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