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그러니까 8일 현재로부터 불과 5일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국회에서는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인 12월 2일을 넘기고 여야가 극한 대치를 벌였고, 정부에선 미국 대선 이후 통상 환경 변화와 대응 방향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심지어 대통령실도 연말연시 소비진작 방안을 곧 발표할 것이란 구상을 언론에 알리기도 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국민은 그날 밤 10시30분 께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가짜뉴스 같은 소식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2024년 대한민국이 계엄을 선포할 정도로, 전시에 비견할 만큼 혼란스럽단 말인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었다.
전 국민이 뜬 눈으로 밤을 새우게 만든 ‘6시간 계엄’이 끝난 이후, 나라가 더 혼란스럽다.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은 야당 독주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경고 차원이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했다. 국회에 투입된 것보다 더 많은 병력의 계엄군이 선거관리위원회로 진입해 내부 서버를 촬영하고 면밀히 살펴봤다는 점, 야당 대표뿐만 아니라 ‘눈엣가시’ 여당 대표까지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있었다는 사실 등 속속 드러나는 내막은 경악을 금치못하게 만든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가 일부 극우 유튜버가 주장하는 부정선거론에 사로잡혀 선관위에 군 투입을 지시하고 정치인들 체포, 구금을 시도했다니. 의료개혁에 반대한 전공의의 현장 복귀를 명령하며 이를 어길 시 ‘처단’하겠다는 계엄포고령은 계엄으로 모든 현안을 풀겠다는 의도 아닌가. 윤 대통령은 군부독재를 꿈꿨던 것인가.
계엄선포에 대한 입장을 밝힌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또 어떠한가. 여권에선 해명에 치우치면 역풍이 우려돼 사과에 집중했다고 설명하지만 2분에 그친 담화는 내용도, 형식도 국민의 공감을 사기에는 부족했다.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가 위헌·위법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윤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여당의 모순에 찬 행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계엄정국이란 엄중한 상황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한동훈 대표와 사전 논의 없이 의원총회에서 박수로 탄핵 부결을 당론으로 정해버렸다. 한 대표는 의총에서 결정해버렸으니 마지못한 듯 탄핵을 막겠다는 입장을 냈다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대통령 직무 정지, 사실상 탄핵을 주장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임기, 정국 안정방안을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하자 또 말을 뒤집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탄핵 반대에서 찬성으로, 또 반대로 돌아설 수 있는가. 그러니 야당이 이 같은 입장 변화를 두고 2선 후퇴를 선언한 윤 대통령과의 야합을 의심하는 것이다.
7일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김건희 특검법 표결을 한 국민의힘 의원 대부분이 일제히 퇴장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특검법은 반대하고 탄핵안은 보이콧하는 것으로 윤 대통령 부부를 지킨다는 셈법이었다.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돌아오라”고 외치는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모습은 마치 실종된 민주주의를 향해 외치는 듯했다. 국회의원이라면 최소한 표결에라도 참여했어야 한다.
특히 윤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고, 향후 20~30년 간 집권당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탄핵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이다. 여당 내에서도 탄핵 찬성파들은 지금 정권을 내어주고 매를 맞는 것이 추후 지방선거와 차기 대선에서 폭망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위법적인 계엄을 지시한 윤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차라리 다음 정권을 민주당에 넘겨준다 하더라도 되찾아올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야당은 이런 국민의힘을 향해 벌써부터 ‘내란정당’이라며 파상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향후 윤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수사가 본격화할수록 여당을 향한 이 같은 공세의 강도는 더 거세질 수밖에 없고 여당을 빠져나가는 구심력도 커질 것이다.
국민의힘이 표결을 회피한 그 시각, 국회 앞에 운집한 시민만 대형영상을 통해 국민의힘 의원들의 선택을 지켜본 것이 아니었다. 부산에서도 울산에서도 경남에서도 시·도민은 두 눈을 뜨고 자신들의 민의를 대변하라고 배지를 달아준 ‘34명 국민의힘’을 지켜봤다. 국민은 어느 정당이 다음 정권을 가져가는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려고 했고,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질서 있게 수습되는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전임 문재인 정부를 향한 비아냥으로 종종 사용되지만, 이번 계엄정국을 정의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어 보인다. 다만 다시는 겪어보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김태경 서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