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밤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헤집고 다니는 행태를 밤새 지켜본 사람들의 첫번째 반응은 황당함이다. 불가역한 민주주의 체제라 여겼던 대한민국이 최고지도자 한 사람의 어이없는 판단 때문에 한순간에 퇴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놀라웠다는 것이다. 비상계엄을 실전으로 겪은 적이 없는 MZ 세대의 충격은 더했다. 방탄모와 방탄조끼를 착용하고 K1 기관단총을 든 계엄군이 군홧발로 유리창을 깨자 소화기를 뿌리며 이에 저항하는 국회 직원들 모습은 다큐멘터리나 역사책, 혹은 제3세계 정정 불안을 전하는 외신에서나 접하던 장면이다.
하지만 학창 시절 10·26과 12·12를 겪은 세대가 ‘12·3 사태’를 보는 관점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계엄군의 행동이 일사불란하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최루탄이나 총성은 물론 시위대와 심각한 몸싸움조차 없어서다. 상부 지시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군인들은 버스에서 대기하다가 몇시간 뒤 슬그머니 철수했다. 일부는 머리 숙여 사과하는 모습까지 포착됐다. 계엄 선포는 곧 유혈 사태를 의미했던 격동의 시기, 그 트라우마를 간직한 기성세대 입장에선 “이게 무슨 계엄령이냐”고 반응할 만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3일 밤 10시 30분부터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한 4일 새벽 1시까지, 45년 만의 비상계엄이 지속된 시간은 고작 2시간 30분이다. 해제 선포까지 쳐도 6시간이다. 이날 좀 일찍 잠자리에 든 사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날 아침을 맞았다. ‘위반자는 처단한다’고 위협했던 포고령 1호조차 과거 계엄 문건을 ‘복붙’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인터넷에는 ‘3시간 계엄 천하’를 비웃는 이런 밈으로 가득하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블뤼메르 18일’ 책 서문에 쓴 이 문구가 요즘처럼 적확하게 들어맞기도 힘들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조롱과 경멸의 대상으로 추락하면 국가 경영은 불가능해진다고 경고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소극(笑劇)이었을지 몰라도 파장은 비극적이다. 주가와 원화가치는 곤두박질치고 안 그래도 가라앉은 내수엔 더 차디찬 냉수가 뿌려졌다. 계엄에 놀랐든 이를 비웃었든 결국 수렴되는 국민 정서는 하나다. 불과 며칠 전까지 K-컬처로 세계를 휘어잡고 노벨문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한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우울감과 수치심이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