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대중가요 ‘아파트’를 아느냐고 물었다고 가정해 본다. 예전에는 하나 같이 “아, 가수 윤수일이 불렀지”라고 답했을 터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1982년 발표돼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아버지가 미국인인 까닭에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윤수일은 여성 팬을 몰고 다녔다. 아직도 중년층의 회식 때에는 이 노래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자주 불린다.
반면 응답 대상자를 젊은 층으로 한정하면 전혀 다른 노래가 거론된다. 바로 걸그룹 블랙핑크의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함께 부른 ‘아파트’(APT.)다. 지난 6일 로제가 발표한 솔로 정규 1집 ‘로지’(rosie)의 선공개 곡으로 지난 10월부터 불린 이 노래는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10월 18일 전파를 탄 뮤직비디오는 지난 5일 유튜브 조회수 5억 회를 넘어섰다. K-팝 솔로와 그룹을 통틀어 가장 빠른 속도다.
로제의 노래는 젊은 세대 놀이 수단으로도 자리 잡았다. 회식 중 꿀밤 때리기를 하거나 벌주를 마실 사람을 고를 때 이 노래를 합창하면서 진행한다. 사전에 층수를 말하고는 서로 포갰던 손을 하나씩 빼는 방식이다. 요즘 웬만한 주점 등에서는 아파트를 ‘떼창’하며 놀이를 즐기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의아해 하다가 우연히 배운 뒤에는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고 한다.
미국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른 로제의 ‘아파트’는 전 세계를 사로잡은 K-팝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각국이 한국 대중음악의 뛰어남을 인정한 지는 오래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우리나라 가수들은 독보적인 가창력과 춤 등으로 국제 가요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K-팝의 힘은 K-푸드, K-조선, K-뷰티, K-드라마 등 이름으로 각 분야에서 한국의 우수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선도 역할을 했다.
근데 최근 이런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이 생겼다.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비상계엄이 선포됐다가 철회되고부터다. 지난 6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K-팝과 독재자들:민주주의에 가해진 충격이 한국의 양면을 드러냈다’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그동안 한류 등 열기에 가려졌던 한국의 어두운 면이 일시에 불거졌다는 내용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정상화되겠지만 외국의 이 같은 반응은 뜨끔하게 다가온다. 무능한 대통령이 정치와는 거리가 먼 한류에도 비수를 꽂았다. 참담할 따름이다.
염창현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