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폐지를 위한 10년 교육 실험’을 제안한다. 현재의 수능이 우리 교육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 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사회적 합의의 어려움, 실행 동력 부재, 대안 미비로 수능 폐지는 ‘넘사벽’이 됐다. 한국 교육은 수능이라는 병의 근원을 뿌리 뽑지 않고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
이 제안의 핵심은 K-에듀의 근간이 되는 교육 방법을 고민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평가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미래 세대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도 위험한 12년간의 지뢰밭’을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 10년은 교육제도의 안착과 제도 도입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교육 실험은 현 상황을 개선하고 미래 세대를 육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하기에 개인의 실험적 정책이 시도돼서는 안 된다. 민선 교육감들이 지난 수십 년간 해왔던 ‘○○교육’이 여기에 해당한다. 많은 이러한 교육이 전국 각지에서 행해졌음에도 한국 교육은 바뀐 게 없다.
필자가 제안하는 교육 실험의 목표는 ‘자신과의 경쟁이 즐거운 교육’을 찾는 것이다. 교육에서 경쟁의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나’ 여야 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경쟁이 즐겁고 교육이 과거의 나를 이기는 데 도움을 줄 때 한국 교육은 산다. 한국 교육이 마주한 많은 문제 역시 저절로 풀린다.
한국 사회가 ‘묵인’하는 것 중 하나는 교육과 수능을 경쟁 도구로 보는 것이다. 경쟁의 폐해를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여러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용인하는 아이러니는 한국 교육 정상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신분 상승과 부의 대물림을 위해 전 국민이 참여하는 과잉 교육 경쟁은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증가와 ‘비교 지옥’사회로 나타나고 있다.
10년의 교육 실험에서는 교육과정과 평가가 불일치한 것도 잡아야 한다. 한국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훌륭한 초·중등 교육과정과 교과 전문성이 가장 우수한 교사들이 있지만, 상대 평가와 수능의 벽에 가로막혀 모든 게 공염불이 되고 있다. 그래서 수능 폐지를 위한 또 하나의 전제는 ‘하나의 정답만 맞추는 데 점수를 주는 게 아니라 가장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찾았을 때 점수를 주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달 서울대에서 열린 ‘2024 한국국제바칼로레아(IB)교육학회 추계대회’와 ‘대한민국 미래 교육 서밋’에 참가하고 난 뒤 오랫동안 생각해온 이 제안의 공론화 결심을 굳혔다. 학회와 서밋의 주제는 초·중등 교육과 대학과의 연계였는데 이 자리에서 수능 폐지 주장이 나왔다. 김일환 제주대 총장은 서밋 주제발표에서 수능 폐지 주장을 했고, 이를 받아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은 “교육감들과 대학 총장들이 만나 수능 폐지를 위한 지혜를 모으자”고 제안했다. 김 총장은 IB학교인 제주 표선고 방문 때 “학생들의 살아있는 눈빛과 적극적 자기표현과 행복함에 놀랐다”고 했다. 임 교육감은 “대학 평가에 모든 게 맞춰지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버려야 할 첫 번째는 수능”이라고 강조했다. 학회와 서밋에 참가한 오세정 전 서울대 총장과 강준호 서울대 사범대 학장도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할 방법으로 IB가 가진 잠재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학회에는 IBDP(IB고교과정)를 이수하고 국내외 대학에 진학한 대학생 8명이 온·오프 라인으로 참석해 IB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말했다. 표선고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사회과학계열에 재학 중인 박가영 씨는 IB의 좋은 점을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고 서로 도와주면서 과제를 해결했던 것”을 꼽았다. 양세미(경북사대부고 졸업. UNIST 재학) 씨는 “IB가 다양한 사람과 살아가는 걸 강조해 대학에서 글로벌 친구들을 오픈 마인드로 대할 수 있었다”고 했다. IB의 한계도 지적했다. 유태경(표선고 졸업.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재학) 씨는 “IB는 절대 평가에 대한 기준이 없어 불안했다. 국내 대학이 IB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았다. IB는 교사의 참여 정도에 따라 영향이 달라진다”고 했다.
한국 교육의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할 10년 교육 실험 방법론으로 IB를 추천한다. 2019년 한국 공교육에 상륙한 IB는 국민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진학은 물론이고 학생의 내적 성장, 교권 강화 등 지금까지 한국 교육에서 약점으로 지적된 것을 강화하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대부분이 IB를 실시하고 있거나 검토하는 이유다.
IB의 한계도 분명히 있다. IB를 도입하는 학교마다 분담해야 하는 납부금을 두고 일각에서 ‘외세 교육’으로 비판하는 게 대표적이다. 교육 10년 대계를 위해 만든 국가교육위원회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회’가 1년 6개월 만에 200억 원이나 쓰고 해체됐다. 언급한 두 사례는 새로운 교육 도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웅변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와 탁상공론의 희생양은 미래 세대이고 대한민국이다.
생성형 AI시대 암기 위주의 시험과 머릿속의 단순 지식 활용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앞으로 10년, 미래 세대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교육을 혁신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