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영국과 미국 사전출판사들이 발표하는 ‘올해의 단어’와 각 나라 매체가 보도하는 ‘올해의 유행어’가 잇따른다.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사회 현상, 대중의 관심 등을 알 수 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발간하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는 ‘뇌 썩음’(brain rot)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 정신적, 지적 상태를 퇴보시키는 사소한 정보들이 넘쳐나는 세태가 반영된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 출판사 메리엄웹스터 올해의 단어는 ‘양극화’(Polarization)다. 한 사회나 집단의 의견이나 신념, 이해관계가 연속해 걸치지 않고 양극단에만 집중된 상태란 뜻이다. 올해 미국은 대선을 거치면서 이런 현상이 심화했다. 일본의 ‘올해의 유행어’는 ‘후테호도’다. 올초 방영된 드라마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를 줄인 말이다. 권위적이고 교양없는 중년 남성에게 경고하는 말이다. 중국은 ‘반웨이’를 꼽았다. 평소 멀쩡하던 직장인들이 출근만 하면 피곤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바뀌는 모습을 일컫는다.
우리에겐 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가 있다. 대학교수들은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뜻의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선정했다. 이는 단일 사자성어가 아닌 ‘도량(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뛰어 다님)’과 ‘발호’를 합친 것이다. 발호는 물고기가 대나무로 엮은 통발을 뛰어넘는다는 의미다. 도약력이 큰 물고기만 통발을 넘을 수 있다. 그래서 대단치도 않은 힘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 1086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2일까지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전인 지난 2일까지 조사결과였는데도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대변한 것이다. 교수들은 윤 대통령 부부의 국정농단 의혹, 정부의 권한 남용 등 그간 국민 위에 군림만 하려는 듯한 윤 대통령 행태를 꼬집었다. 최악의 사례는 지난 3일 심야에 대한민국을 느닷없이 강타한 비상계엄령이다.
윤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 목적이 거대 야당의 ‘권한 남용’을 막고자 함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계엄령은 대통령 고유의 통치 행위 범위에서 이뤄졌으므로 위헌·불법적이지 않다고 강변했다. 비상계엄 선포로 공포와 불안에 떨었을 국민에게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라고 했다. 궤변이다. ‘도량발호’가 윤 대통령에게 딱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아닐 수 없다.
이은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