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지인들과 목포 여행을 갔다가 문학관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은 목포를 대표하는 네 명의 작가에 대한 문학세계를 조명하며 이를 다층적으로 전시한 모습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1991년 근대 여성 소설가로 최초의 장편소설을 쓴 박화성 기념 문학관이 대의동에 세워졌는데, 이를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면서 사실주의 연극을 완성한 차범석, 그리고 근대극을 도입한 김우진과 평론 분야에 독보적 세계를 구축한 김현의 자료와 소장 유품들이 함께 전시 보관되고 있었다. 이를 통해 목포에 대한 문학사적 사유와 함께 그분들의 구체적인 삶의 흔적들이 목포라는 장소를 통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한 지인이 내게 우리 부산에도 이 같은 문학관이 존재하는지를 물었다. 당연히 부산에도 요산과 향파 선생님을 기념하는 문학관이 각각 있고, 또 해운대에는 추리문학관이 있다고 얘기를 하니, 그럼 목포처럼 부산시에서 운영하는 공립문학관인지를 물어와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제2의 도시며 문화 수도로 자부하는 부산이 지역을 대표하는 공립문학관이 없다는 현실에 순간 큰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물론 언론을 통해 문학관 건립 취지에 모두 공감하며 부산시와 건립추진위원회가 부지를 물색해 최종 금정구 ‘만남의 광장’에 조성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한 박형준 부산시장의 공약사업이기도 하여 비록 시기가 늦은 감은 있지만, 지역의 많은 문학인들이 환영하며 큰 기대를 하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마침 올해 필자가 ‘부산작가회의’라는 문학 단체의 장을 맡게 되어 부산시가 주관하는 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 회의에 나간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부지 면적과 건립 예산 문제로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그간 시와 건립추진위가 어렵사리 최종 합의한 당초 건립 안에서 경제적 타당성 부족과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에 통과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예산과 면적이 절반 가까이나 줄어든 대안을 부산시가 제시하는 과정에서 여러 위원들이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초 건립 안도 추진위 입장에서는 우리 부산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문학인이 창작활동을 하고 있고 또 이를 뒷받침할 대표적인 공립문학관이 광역시 중 유일하게 없기에 최대한 양보해 차선책으로 결정한 사항이었는데, 이마저도 다시 뒤바뀌는 상황에서 엄청난 당혹감과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급기야 부산의 각 문학 단체들이 긴급하게 모여 문학관 건립 정상화를 위한 모임을 만들어 이 상황을 규탄하는 성명서와 함께 집회를 열었고, 이에 시는 원상회복하여 원안대로 시장이 세계적 수준의 문학관을 만들겠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이미 상처 난 문학인들의 자존심은 그 골이 깊었고, 게다가 수천억 원을 들여 오페라하우스와 클래식 센터를 짓고, 이미 두 개의 미술관이 운영되는데도 불구하고 문학관 건립 예산의 수십 배에 달하는 프랑스 퐁피두 미술관 분관을 무리하게 유치하려는 부산시의 문화예술 편중 정책에 문학계는 더더욱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당초 원안대로 약속한 문학관의 면적과 건립 예산을 보면 다른 광역시 문학관의 평균치라고 부산시가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미 10여 년 전에 개관한 타 지역 문학관들의 공통적인 문제점들로 부지가 협소해 이전을 고민하고 또 별관을 짓는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으며, 일부 문학관은 시민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전철을 되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종 선정된 ‘만남의 광장’ 부지는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고속도로 진출입 지역에 위치해 있어 차량 소음과 매연에 매우 취약하고, 바로 옆 금정문화회관과의 주차 문제로도 큰 홍역을 치를 것이라 예상된다.

우리가 건립할 문학관은 단순히 자료를 전시하고 소장하는 일차원적 차원을 넘어 시민 독자들에게 세계를 풍부하게 인식하는 감성과 함께 그 상상력을 발현시키는 다양한 동력원이 돼야 한다. 그리고 부산이 가지는 특수한 정서와 문화를 보다 문학적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복합적 경험을 유도할 환경도 아울러 마련돼야 한다. 또한 근대 개항 이후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한국 문학의 중심부 역할을 톡톡히 해온 ‘부산’을 담아낼 콘텐츠 연구는 문학관 건립에 앞서 필수 과제이다.

따라서 문학관은 이런 ‘부산’을 추체험할 수 있는 생태 친화적인 여건과 함께 부산시민,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스스로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왕 건립이 늦어진 시점에서 단지 문학관을 지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조급함에 함몰되지 말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타 지역의 문학관을 교훈 삼아 거시적 차원에서 새로운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