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바꿔야 한다. 헌법 말이다. ‘87년 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에서 나온 대통령 8명 가운데 재임 중이나 퇴임이후 성한 대통령이 없다. 왜 한국의 대통령은 실패의 늪에 빠지는가? 라는 질문을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87년 헌법은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이다. 국민의 손으로 쟁취한 것이지만, 유력 정치인들의 손익계산도 작용했다. 군부독재에 항거한 국민과 야당은 장기집권에 대한 경계가 강했다. 1980년 전두환의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래서 5년 직선 단임제 대통령을 선택했다. 지방자치 실시나 감사원 설치 등이 추가됐지만, 권력구조는 그대로였다. 이른바 ‘한국식 민주주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독소를 빼지 못했다.
이 헌법에서 5년을 터울로 YS와 김대중(DJ)이 집권했다. ‘정치 9단’으로 불린 두 대통령도 만신창이가 됐다.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고, 측근의 전횡이 끊이지 않았다. YS와 DJ는 그나마 자신이 사법처리되는 일은 없었다. 그 이후 재임한 대통령은 모두 수사의 대상이 되거나 단죄를 받거나 법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대통령의 실패를 반복할 수 없다는 정치권의 인식은 18대 국회에서 본격화 됐다. 이후 거의 모든 국회의장은 산하의 개헌 자문위원회를 두고 개헌안을 마련했다. 김형오 제18대 국회 전반기 의장은 대통령의 실패가 반복되는데 대해 “헌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등 대통령이 직접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실제로 개헌안을 내놓은 적도 있다. 최근 한 언론사의 의뢰로 엠브레인퍼블릭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60%(4년 중임제 45%, 의원내각제 15%)에 달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개헌에 반대하는 이들이 떠드는 말이 늘상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라고 강변한다. 어떤 이는 ‘개헌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발을 뺀다. 정치적 상황의 유불리를 따지는 변명에 불과하다. 실패한 대통령들도 그랬다. 취임이후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오르면 개헌의 ‘개’자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면 ‘개헌’을 거론했다. 개헌은 ‘정략적’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그러는 사이 제왕적 대통령직에 오른 이들이 무너졌다. 국민은 ‘한국 대통령은 신을 데려다 놔도 안되는 모양’이라고 탄식한다.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어리석음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먼저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 대통령 1인의 권력독점은 현실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대통령 1인이 얼마나 큰 사고를 칠 수 있는 지 우리는 현실에서 보고 있다. 대통령은 내각을 무력화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력을 휘둘렀다. 그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방법을 두고 길이 엇갈린다. 대다수 정치인들은 대통령과 총리가 외치와 내치를 각각 맡는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에 논독을 들인다. 하지만 다수 국민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 한 두번이 아니라 지난 20년간 여론조사에서 한결같은 결과다. 이런 간극에 대해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인의 탐욕과 국민의 직선욕구의 충돌로 설명한다. 김 교수는 내각제를 ‘국회의원에 의한, 국회의원을 위한, 국회의원의 정치’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다. 국민의 국회의원과 여의도 정치에 대한 높은 불신과 강한 거부감을 감안하면 선택지로 현실성이 낮다. 대통령과 의회가 행정권을 나누는 이원집정부제 또한 같은 이유로 대안이 되기 어렵다. 대통령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선출하겠다는 국민의 의사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제왕적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철칙을 어떻게 풀 것인가. 의회의 권한을 강화해 대통령과 견제와 균형이 실질적으로 달성되도록 하는 방안이다. 동시에 대통령의 행정권을 시장·도지사와 나눠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부패와 오판 위험성을 낮추는 유일한 길이다. 이 경우 의회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는 상하 양원제를 통한 ‘숙의와 의회 내부 견제’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인구비례의 단원제 국회로는 민의를 대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역대표형 상원을 통해 지역·세대·계층간 조정과 통합의 의사결정 과정이 필요하다. 제왕적 대통령권한의 최악으로 꼽히는 국회의원의 내각참여는 완전 폐지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부하’로 오인하는 첫 요소가 바로 의원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구조이다.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부 의원이 대통령의 행정부 장관을 겸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다.
손균근 대기자·㈔한국지역언론인클럽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