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온도 에너지와 같은 친숙한 개념이라도 일상적인 경험이나 직관에 반하는 경우가 많고, 양자(quantum) 엔트로피(entropy) 같은 개념은 그 자체로 복잡하고 추상적이며,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우리말이나 한자어를 찾기도 쉽지 않다. 개념이 없다 보니 과학은 늘 어렵고, 재미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초·중등학교에 적용되고 있는 교육과정에 따르면 과목으로서 ‘과학’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배운다. 하지만 초등학교 1~2학년 통합교과 중 하나인 ‘슬기로운 생활’ 과목에서도 자기 주변의 모습과 변화를 관찰하고 탐구해보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학령기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과학을 배운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도 과학은 슬기로운 생활부터 배웠다. 하지만 라떼는 과학을 배우지는 않았다. 그 당시 내가 배운 것은 자연이었으며 과학이라는 과목은 중학교에서 처음 배웠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자연이 과학이 되는 그 순간부터 배워야 하는 내용의 양과 깊이가 달라졌던 것 같다. 초등학교에서는 자연을 관찰하고 감상하는 것이 전부였다면 중학교부터는 자연에서 관찰할 수 있는 현상뿐만 아니라 관찰하기 어려운 현상들까지도 모형을 이용해 표현해야 했고, 정성적이고 정량적으로 분석해야 했다. 심지어 그 쓰임새까지도 중요하게 다뤄야 했다. 과학을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과목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아는 것이 힘(scientia potentia est)이라지만, 지식(scientia)으로서 과학(science)은 항상 우리의 사고력을 시험한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학문 체계’로서의 과학(科學)도 과학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중학교에서 배운 과학은 고등학교에서 물리 화학 생명과학 및 지구과학으로 나누어지며 각 분야의 전문성과 깊이가 더해진다. 게다가 현재 초·중등학교에서 다루는 과학 개념은 대부분 19세기 전후 형성된 낡은 것으로, 과학 분야에 종사하고자 한다면 대학 이후의 과정에서 최신의 과학 개념을 또 배워야 한다. 과학 앞에서 우리는 평생 ‘개념 없는 사람’이 된다.
문득 슬기로운 생활이라는 과목명에 의문이 생겼다. 과학과 슬기롭게 생활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길래 슬기로운 생활에서 과학을 배운 것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슬기’를 검색해보니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잘 처리해 내는 재능’이라고 나왔다. 그 순간, 슬기가 과학이라는 학문의 본질과 썩 잘 어울린다는 느낌과 함께 차라리 과학을 자연이나 슬기라고 표현했다면 조금은 쉽고 재미있게 배웠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감성과 과학의 쓸모는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요즘 과학은 감성적인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과학과 기술을 합해 ‘과학기술’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과학을 실용성과 기술적 응용이 중요한 학문으로 인식되도록 영향을 주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부터 과학을 자연이나 슬기로 바꿔 부르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슬기로운 생활에서 자연을 거쳐 과학을 배우는 긴 여정에서 우리가 진짜로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scientia로서의 과학과 科學으로서의 과학은 모두 과학을 어렵게 느끼도록 하지만, 이것이 과학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가변성과 불확실성에 기초해 지식과 지식의 체계를 다루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것. 감성과 쓸모를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쓸모를 한데 엮어 단단한 줄을 만들고, 그 줄로 더 높이 올라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과학의 역할이자 우리가 과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개념 없는 사람’보다 ‘슬기 없는 사람’이 때로는 더 무섭다.
과학을 배운다는 것은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며,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되는 길이다. ‘슬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럼 당장 과학책을 펼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