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 삼각파도를 만났다. 트럼프 발작으로 시작된 고환율은 정치적 충격으로 악화되더니 이번에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기름을 부었다.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기준금리를 0.25% 내리면서 동시에 트럼프 정부에서 예상되는 물가를 잡기 위해 2025년에는 금리인하 속도를 늦추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미국금리가 뛰었고 달러 강세로 이어졌다. 원화는 곤두박질쳤다. 이러다 달러당 1500원 시대가 열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고환율은 여러 면에서 치명적이다. 달러채로 돈을 빌린 기업들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한 기업들도 망연자실이다. 환율이 뛴 만큼 환차손이 급격히 는다.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올려 내수시장을 힘들게 만든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나섰다. 외환 유입 규제를 완화해 달러가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통로를 넓혔다. 국민연금 보유 달러 활용을 위해 이곳과 정부 간 외환스와프 거래 한도를 650억 달러로 늘렸다. 외환보유고와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을 이용해 원화방어에도 나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환율이 지시하는 것에 귀 기울여 행동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고환율은 가장 먼저 달러 소비를 줄이라고 명령한다. 해외여행 소비가 대표적이다. 한국은행의 서비스수지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여행수지는 64억8000만 달러 적자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쓴 돈이 78억4000만 달러라고 하니 이에 적자를 더하면 한국인이 외국에서 쓴 돈이 나온다. 143억2000만 달러다. 여기에 두 배를 곱하면 2024년 한국인이 해외여행에서 쓴 달러를 대략 추정할 수 있다. 280억 달러가 넘는다. 한국 조선업계는 중국 조선기업들의 위협 속에서도 2024년 242억 달러 수출을 위해 사활을 걸었다. 한국인의 해외여행 소비는 조선업 전체 수출액을 날려버린 것과 같은 금액이다. 여행수지 적자는 2000년대 내내 일어났다. 이런 소비를 줄이라고 명령한다.
수입소비도 줄이란다. 수출을 위해서는 원자재 수입이 필수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수입을 최대한 줄이라고 명령한다. 에너지 소비가 예다. 한국은 에너지 과다수입국이다. 한국의 해외 에너지의존도는 1990년 88.7%에서 2010년에는 97.5%로 늘었다. 2020년에는 95%, 그리고 2023년에는 93.9%로 개선되었지만, 갈 길이 멀다. 원전이 에너지 수입을 줄이는 방안 중 하나지만 정치갈등으로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고환율은 이런 수입을 줄이라고 한다.
고환율이 부담만 주는 것은 아니다. 수출에는 매우 긍정적이다. 2024년 총수출 예상액은 6850억 달러다. 사상 최대다. 내년에도 이 정도 수출을 하려면 가격경쟁력이 유지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 화폐 대비 원화 가치가 낮을수록 유리하다. 문제는 전 세계의 화폐가치가 달러 대비 떨어지고 있음이다. 달러지수(달러 가치를 유럽 일본 영국 캐나다 스웨덴 스위스의 6개국 화폐와 비교한 지표)가 이를 말해준다.
2024년 2월 23일 기준, 달러지수는 107 정도다. 6개국 화폐가치가 달러 대비 평균적으로 7% 낮음을 의미한다. 6개국 이외의 다른 나라 화폐는 이보다 가치가 더 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추세를 역행해 원화를 강제로 끌어 올리면 문제가 생긴다. 다른 나라 제품수출가는 떨어지는데 한국만 가격을 올린 꼴이 돼서다.
한국수출은 특히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에 민감하다. 이들 통화 역시 원화와 마찬가지로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다. 위안화의 경우, 마지노선인 달러당 7.5위안에 근접하고 있다. 12월 23일 기준 7.29위안이다. 엔화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원화의 이들 통화대비 상대가치다. 원화가 이들보다 강해지면 한국은 수출에서 불리하다. 엔화 대비 원화의 경우, 2009년 1월 2일, 100엔당 1440원이었다. 2024년 12월 23일에는 925원이다. 원화 대비 엔화 약세가 크다. 일본 수출이 살아난 이유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한국수출은 크게 위협받게 된다. 한국의 자동차 수출이 최근 줄어든 한 이유다. 위안화는 원화 대비 소폭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24년 1월 1일 기준 중국 1위안 당 원화는 181원이었다. 12월 23일에는 198원으로 올랐다. 한국제품이 중국제품에 비해 소폭 가격경쟁력을 가진 셈이다.
정리해보자. 한국은 원화가치 급락으로 전 나라가 울상이다. 하루라도 빨리 예전의 가치를 회복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금의 달러 소비성향 구조조정 없이 원화가치를 강제로 끌어 올리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자칫 외환보유고만 축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외환보유고가 4000억 달러 미만이 되면 심리적 불안감이 증폭될 수 있다. 2024년 11월 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4154억 달러 정도다. 환율방어만큼 외환보유고도 줄었을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허리띠 졸라매 달러 소비 줄이고 수출로 달러 유입 늘리라는 고환율의 경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장기적으로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다. 이와 같은 근원적 방법을 제쳐두고 성급히 움직이면 한국은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